
종전 후에도 끝나지 않은 전쟁, 일본군 '잔류 병사'
'잔류 병사(残留日本兵)'는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끝난 뒤에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믿으며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태평양 전쟁기 일본군 병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영어권에서는 이들을 '스트래글러(Stragglers)', 즉 '낙오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왜 종전 소식을 접하지 못했을까?
이들이 종전 이후에도 전쟁을 계속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군주의적 교육과 강한 신념 때문에 일본의 패배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 경우입니다. 둘째, 미군이 태평양 전역에서 구사한 '도약 작전(leapfrog strategy)' 과정에서 고립된 섬들의 통신망이 끊기면서,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 자체가 전달되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들은 종전 후 수년이 지나서도 주둔 연합군과, 이후에는 현지 경찰과 교전을 계속했습니다. 한편 다른 저항적인 일본군 병사들은 아시아에서 서구 세력을 몰아낸다는, 대전 중 일본 제국이 내세웠던 목표에 공감하여 인도차이나 전쟁과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모롤타이 섬에서 생활하다 1974년 12월 항복한 나카무라 테루오가 확인된 마지막 잔류 병사입니다. 필리핀 루방 섬에서 1974년 3월까지 버텼던 오노다 히로오는 두 번째로 마지막까지 확인된 잔류 병사로, 2014년 1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종전 이후에도 전쟁을 계속한 병사들의 기록
1945~1949년
사이판 전투 이후 부하 46명과 함께 미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였던 오바 사카에 대위는 종전 후 3개월이 지난 1945년 12월 1일에야 항복했습니다.
이가와 세이 소좌는 베트민(Viet Minh)군에 참모 장교로 가담했으며, 1946년 프랑스군과의 전투 중 전사했습니다.
해군 중위 출신의 호리우치 히데오는 인도네시아 의용군에서 중령으로 복무하다가, 1946년 8월 13일 마을에서 치료를 받던 중 네덜란드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야마구치 에이 중위와 부하 33명은 1947년 3월 말 펠렐리우 섬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섬에 주둔하던 미 해병대 분견대를 공격했습니다. 이후 일본 해군 제독이 동행한 증원 부대가 파견되어 전쟁이 이미 끝났다고 설득했고, 이들은 1947년 4월 마침내 항복했습니다.
1948년 5월 12일, AP통신은 괌 경찰에 항복한 일본군 병사 두 명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일본 제국 해군 기관총 사수였던 야마카게 쿠후쿠와 마츠도 린소키는 1949년 1월 6일 이오지마에서 항복했습니다.
1950년대
이시이 타쿠오 소좌는 베트민군의 고문 겸 참모장으로 계속 전쟁에 참여하다가, 1950년 5월 20일 프랑스군의 공격으로 전사했습니다.
1951년 6월 27일 AP통신은, 2주 전 아나타한 섬을 방문했던 일본군 상등병이 섬에 아직 18명의 병사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후 이 섬을 정찰 비행한 미 해군 항공기는 해변에서 흰 깃발을 흔드는 여덟아홉 명 무리를 실제로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해군은 신중하게 대응했습니다. 그 상등병이 병사들이 무장이 잘 되어 있었고, 누군가 항복을 언급하면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자들도 있으며 지휘관들은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라고 믿는다고 경고했기 때문입니다. 해군은 코코파(Cocopa)호를 섬으로 보내 병사들을 무사히 데려오려 했고, 이들의 섬 생활은 훗날 영화 『아나타한』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상등병 아카츠 유이치는 1944년부터 루방 섬에서 계속 싸우다가 1950년 3월 필리핀 로옥 마을에서 항복했습니다.
하사 시마다 쇼이치는 루방 섬에서 1954년 5월 필리핀 병사들과의 교전 중 사망할 때까지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타니모토 키쿠오 중위는 베트민군의 고문이자 지휘관으로 활동했으며, 베트남이 독립한 뒤인 1954년에 귀국했습니다.
1960년대
민가와 분조 상등병은 1944년부터 1960년 5월까지 괌 섬에 숨어 지냈습니다.
민가와의 상관이었던 이토 마사시 하사는 며칠 뒤인 1960년 5월 23일 괌 섬에서 항복했습니다.
1970년대
이토의 부하였던 요코이 쇼이치 하사는 1972년 1월 괌 섬에서 붙잡혔습니다.
코즈카 긴시치 상등병은 오노다 히로오와 함께 28년간 버티다가, 1972년 10월 필리핀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사망했습니다.
오노다 히로오 중위는 1944년 12월부터 1974년 3월까지 아카츠, 시마다, 코즈카와 함께 루방 섬에 남아 있었으며, 1974년 3월 옛 상관이 직접 찾아와 귀환을 명령하자 마침내 무장을 해제했습니다.
나카무라 테루오 상등병(아툰 팔랄린, Attun Palalin)은 1974년 12월 18일 인도네시아 공군에 의해 모롤타이 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1980년대
프랑스 통신사(AFP)는 1980년 나카하라 후미오 대위가 필리핀 할콘 산에서 아직 살아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나카하라의 옛 동료였던 마야자와 이사오가 이끄는 조사팀은 그의 오두막으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했다고 밝혔지만, 그가 1980년까지 생존해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