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자동인형처럼 싸우다: 말라야 방어선의 붕괴

후퇴의 연속: 구룬에서 크리안 강까지

12월 14일과 15일에는 구룬(Gurun)에서 격전이 벌어졌고, 16일에는 페낭 섬이 철수되었다. 같은 날 머리-라이온(Murray-Lyon) 지휘관은 부대를 크리안 강(Krian River) 이남으로 물렸다. 이 시점에서 영국군은 이미 공중 엄호를 잃은 상태였고, 전차 증원을 기대하는 것도 포기한 처지였다.

12월 17일, 퍼시벌(Arthur Percival) 사령관은 페락 강(Perak River) 방어선에서 저지전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제12여단을 머리-라이온에게 배속해 그의 사단을 보강했다. 제15여단은 제6여단의 잔존 병력을 흡수하며 전력을 재편했다.

싱가포르의 긴급 회의

다음 날 싱가포르에서는 더프 쿠퍼(Duff Cooper)가 군 수뇌부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런던에 보고하고, 전투기 4개 비행대와 폭격기, 그리고 보병 여단 4개를 긴급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일본군을 최대한 북쪽에서 저지한다는 퍼시벌의 전략이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야마시타의 과감한 판단

그러나 두 개 사단을 전장에 투입한 일본군을 막아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12월 26일, 일본군은 별다른 저항 없이 페락 강을 건넜고, 야마시타(Yamashita) 중장은 근위 제4연대에 이포(Ipoh) 진격 명령을 하달했다. 그의 판단은 명확했다. 영국군은 완전히 사기가 꺾여 산발적으로만 저항할 것이며, 일본군의 진격 기세 자체가 장기간의 방어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더 공격적인 적을 상대로는 감히 시도할 수 없었던 무모한 작전도 충분히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군의 낙관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근위사단장 니시무라(Nishimura)는 정면 공격에 병력의 3분의 1만 투입하고, 나머지는 배후에서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이 전술은 매번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군은 이미 거의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머리-라이온을 대신해 부임한 파리스(Paris) 장군은 병력의 상태를 몹시 우려했고, 그의 휘하 장교 한 명은 이렇게 증언했다.

"병사와 장교들은 자동인형처럼 움직이며, 가장 단순한 명령조차 종종 이해하지 못합니다. 밤마다 후퇴하여 새로운 방어 진지를 구축해야 했고, 낮마다 공습에 시달리며 발이 묶였습니다."

캄파르와 슬림 강의 참패

퍼시벌은 캄파르(Kampar)의 강력한 방어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1월 2일까지 사흘간의 전투 끝에 일본군이 방어선을 압도했고, 그는 병력을 슬림 강(Slim River)으로 철수시켰다. 그리고 1월 7일, 또 한 번의 참사가 벌어졌다. 하루가 끝나기도 전에 제12여단은 궤멸했고, 제28여단은 정원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일본군은 다시 한번 전차를 앞세워 도로를 따라 과감히 돌진해, 대전차포가 대응할 새도 없이 영국군 방어선을 관통한 뒤 양측의 보병 진지를 분쇄했다. 일본군의 피해는 극히 경미했다.

슬림 강의 패배는 말라야 중부가 적에게 개방되었음을 의미했다. 이제 조호르(Johore) 방어 역시 심각하게 위태로운 국면에 놓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