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곧 자신감이 회복된 일본군은 사에키의 지휘 아래 모든 병력을 중앙에 집중시켰고, 마침내 영국군 진지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레스터 연대와 제22구르카 연대는 서로 사이에 빈틈이 벌어진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버텼고, 카펜데일은 여전히 일본군을 격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가와무라 장군의 총공격
그러나 제5사단 보병을 지휘하던 가와무라 장군이 직접 전선에 도착하며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그는 제41연대에게 도로 동쪽 측면으로 이동하라고 명령하는 한편, 제11연대에게는 서쪽 공격을 준비하게 했습니다. 두 부대 모두 전력이 온전했고, 전투에 투입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면 마주한 인도 제11사단은 갈수록 지쳐가고 조직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병사들 사이에는 온갖 소문이 파다했으며, 어느 순간에는 수송부대가 적이 또다시 돌파했다고 믿고 공포에 사로잡히기까지 했습니다.
후퇴 명령과 혼란스러운 철수
머리라이언 사단장은 이제 다음 날까지 사단을 전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줄 장애물 뒤로 물리지 않으면 부대가 궤멸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는 제3군단에 후퇴 허가를 요청했고, 퍼시벌은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결국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밤 10시, 제11사단에 지트라에서 케다 강 남안의 알로르스타 방면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새로운 진지는 후방 약 20km 지점에 있었고, 병력들은 폭우 속을 이동해야 했습니다. 일부 부대는 도로와 일본군 전차를 피하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이동하며 차량과 화포를 버렸습니다. 후위부대와의 격렬한 충돌 끝에 새벽 4시 30분, 일본군은 마침내 적과의 접촉을 잃었습니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
지트라에서 벌어진 이 참사는 영국군에게 뼈아픈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가와무라는 전차 승무원을 제외하고 겨우 581명의 병력만을 투입했으며, 손실은 50명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반면 영국군의 손실은 수천 명에 달했습니다. 제15여단은 병력의 4분의 3을 전장에 남겨두었고, 제28여단 역시 700명 이상을 잃었습니다. 화포, 장비, 보급품의 손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영국군의 사기는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반대로 일본군의 사기는 갈수록 높아져갔습니다. 상륙 이후 비스킷으로만 연명해 온 일본군 병사들은 담배, 빵, 통조림을 발견했습니다. 가와무라는 차량을 대량으로 노획한 것을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차량을 움직일 휘발유와 노획한 화포에 쓸 탄약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야마시타의 판단
야마시타는 11월 10일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말레이의 영국군에 인도 부대가 추가된다면 우리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사단장들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보고는 그의 판단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인도인들에게는 전투 의지가 없다. 그들은 항복하는 것을 기뻐한다. 더 이상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 되어 안도한다." 이는 당시 일본군 사이에서 하나의 단골 논조였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알 도리 없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마주한 인도 부대들은 훈련이 부족했고, 장교들만큼이나 방향을 잃은 상태였으며, 인도 육군의 실체를 전혀 대표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일본군은 이 사실을 2년 후에야 깨닫게 됩니다.
되돌릴 수 없는 붕괴의 시작
그러나 지트라는 말레이 전역의 결정적 전환점임이 분명해졌고, 이곳의 상실은 재앙으로밖에 이어질 수 없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진지를 보강하고, 조호르와 싱가포르의 방어를 조직하며, 새로 상륙하는 부대들이 열대 기후에 적응할 시간을 벌 여유는 사라졌습니다.
영국군과 인도군은 다시는 균형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후퇴할수록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병사들은 지휘 체계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후퇴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에피소드를 모두 다룰 수는 없지만, 같은 시나리오가 몇 번이고 반복되었습니다. 일본군이 제11사단의 측면과 배후를 위협하면, 사단은 지키고 있던 다리를 폭파하고 후퇴했습니다. 그러면 일본군 공병 부대가 달려와 다리를 신속히 수리했고, 전차와 보병은 다시 전진을 재개했습니다.
히스 장군은 머리라이언에게 적에게 부대가 갉아먹히지 않도록 전력을 재정비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머리라이언은 저항선을 구축하기보다 먼저 후퇴하는 쪽을 선호했습니다. 결국 누구도 적을 막을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