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 1세, 최초의 독일 '국가군'을 만들다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 1세, 최초의 독일  국가군 을 만들다

1494년, 막시밀리안은 독일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국의 군대는 봉건 영주들의 부대, 제국 자유도시의 부대, 교회 영주들의 부대 등 서로 이질적인 병력들이 뒤섞인 혼재된 조직에 불과했습니다.

막시밀리안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자로서 1480년대의 전란에 휘말리면서, 자신이 지휘할 수 있는 병력만으로는 강력한 적을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무장도 체계적인 훈련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규율과 황제에 대한 신뢰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황제로 즉위하기 전부터 군제 개혁에 착수했고, 그 결실로 유명한 용병 군단 '란츠크네히트(Landsknecht)'가 탄생했습니다.

기병의 재편: 기사에서 총기 기병으로

황제로 즉위한 뒤 막시밀리안은 용병 부대를 중심으로 군대를 재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494년 당시 그의 군대에는 상당수의 독일 봉건 기병 부대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 부대에는 튼튼한 갑옷과 훌륭한 장비를 갖춘 귀족 기사들이 있었던 반면, 갑옷 하나 없이 역마와 빈약한 장비, 훈련조차 없는 기병들도 뒤섞여 있었습니다. 통상 이런 봉건 기병 부대는 매우 두꺼운 종대로 편성되어, 앞열에는 정예 기사들이, 후열에는 장비가 열악한 병사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이들 기병의 비효율성은 스위스와의 충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결국 막시밀리안은 독일 기병과 비슷한 무장을 갖췄으면서도 훈련 수준이 뛰어난 부르고뉴 기사들을 고용해야 했습니다. 아울러 정예 경기병 부대도 새롭게 창설하였습니다.

독일 경기병들은 사슬 갑옷을 입고 경석궁과 검으로 무장했습니다. 이들은 산병 대형으로 움직이며 원거리에서 적을 괴롭혔고, 적의 사기가 흔들리는 징후가 보이면 즉시 진격할 준비를 갖춘 유연한 부대였습니다.

막시밀리안이 폭넓게 활용한 또 다른 기병 유형은 화기로 무장한 기마병이었습니다. 초기에 이들은 '페트로넬(Petronel)'이라 불렸으며, 중장갑을 착용하고 경포와 소총의 중간 형태에 해당하는 초기 화기를 운용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르네상스 시대 유럽 기병의 주류가 된 '라이터(Reiter)' 계열 기병의 선조격 존재입니다.

란츠크네히트: 제국 보병의 핵심

막시밀리안의 보병의 핵심은 바로 유명한 용병 부대, 란츠크네히트였습니다. 이들은 400명씩 10개 중대로 구성된 4,000명 규모의 연대 단위로 편성되었습니다. 병력의 4분의 1은 창과 '양손검', 즉 양손으로 휘두르는 길이 1.5미터에 달하는 대검을 장비했고, 또 다른 4분의 1은 아르케부스(화승총)로, 나머지 절반은 사리사(pike, 롱 스피어)로 무장했습니다.

란츠크네히트는 매우 촘촘한 대형으로 싸웠습니다. 창병들은 최대 24열에 이르는 깊이로 정렬되었고, 창과 검으로 무장한 병사들은 팔랑크스 뒤에 배치되며, 아르케부스 총병들은 전방에서 산병 대형을 이루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 창병이 아군 방진 앞으로 진출해 적의 방진과 정면으로 맞서고, 적의 창을 끊거나 부러뜨리는 임무를 맡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전술은 생환의 확률이 낮은 필사적인 작전이었기에, 이런 부대에는 '잃어버린 부대(verlorene Haufen)', 곧 '희망 없는 자들'이라는 불길한 이름이 붙었습니다. 한편 1507년 이후에는 아르케부스 총병의 독립 부대도 발전하게 됩니다. 이들은 산개 산병전과 최대 10열에 달하는 밀집 종대 전투 모두를 훈련받았고, 차례로 일제사격을 퍼붓는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포병의 현대화

막시밀리안은 포병 육성에도 힘썼습니다. 낡은 대형 공성포(봄바드)는 점차 더 현대적이고 기동성 있는 대포로 대체되었습니다. 동시에 '교회 오르간(Organ Gun)'이라 불린 다연장 경포가 개발되었습니다. 이 포는 3문에서 24문에 이르는 포신을 갖췄고, 대체로 소구경이었지만 근거리에서 살상 병력을 상대로 특히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재탄생한 제국군은 점차 유럽 최강의 전쟁 기계로 성장해 갔습니다. 다만 그 위력이 본격적으로 입증된 것은 주로 막시밀리안의 후계자 카를 5세의 치세였습니다.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왕위를 한 몸에 결합한 카를 5세는 제국을 세계 강국으로 끌어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