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초와 자갈 사이, 마킨 환초 상륙작전의 실상

히 제독은 병력을 규합해 뉴헤브리디스 제도의 바테(Vaté)에서 예행연습을 마친 뒤 목표 지점을 향해 진로를 정했다. 수백 마일 떨어진 해역에서는 터너 제독이 마킨(Makin)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 환초 사이에는 약 100마일(약 160km)의 거리가 있었고, 두 공격 부대는 대체로 평행한 항로를 따라 이동했다.
일본군의 방어 태세와 스미스 장군의 계획
마킨 환초에서 이시카와 소위는 약 800명의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 해병대는 일부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보급 및 건설 부대 소속이었다. 이들은 터너 제독이 공격할 부타리타리(Butaritari) 섬에 주둔하며 견고한 참호 진지, 벙커, 대전차 참호, 그리고 80mm 포 3문의 화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 방어 자산의 대부분은 작은 섬 중앙을 가로질러 펼쳐진 방어선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킨 상륙 부대를 지휘하는 스미스 장군은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먼저 두 개 대대가 부타리타리 섬 서쪽 끝에 상륙해 교두보를 확보한 뒤 일본군 진지를 향해 전진한다. 그리고 작전 개시 약 2시간 후, 제165연대의 세 번째 대대가 석호(lagoon) 쪽으로 돌입해 적의 거점을 직접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11월 20일, 상륙 개시
항공모함의 지원과 함포사격의 세례 속에 상륙 작전은 11월 20일 계획된 일정에 거의 맞춰 진행되었다. 다행히 일본군은 외양 쪽에서 오는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상륙장갑차(LVT)가 없었던 탓에 병사들은 산호초 위에서 '항아리(pots)'처럼 솟은 암석과 미끄러운 자갈 사이를 몸소 헤엄쳐야 했다.
반면 석호 쪽은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병사들은 육지에 발을 딛는 순간 곧바로 일본군 진지 한복판에 뛰어들었고, 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함재기나 함포의 지원사격도 도움이 될 수 없었다. 두 상륙 부대는 당일 서로 연결하는 데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섬 안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진지 소탕, 그리고 "마킨을 점령했다"
11월 21일, 보병과 전차 분대, 그리고 화염방사기와 폭파 장비를 갖춘 공병들이 전날까지 저항해 온 일본군 시설 파괴 작업에 착수했다. 해 질 녘 무렵 스미스 장군의 부대는 임무 대부분을 완수했고, 22일에는 한 개 대대가 숨어 있는 마지막 방어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출동했다. 울창한 식생에 가려진 참호선과 진지를 돌파하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소규모 부대가 밤새 감행한 끊임없는 역습을 격퇴한 끝에 최종 소탕으로 넘어갈 길이 열렸다.
드디어 11월 23일 오전 11시 30분, 스미스 장군은 터너 제독에게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마킨을 점령했다."
연대는 첫 실전에서 전사 66명, 부상 152명이라는 희생을 치렀다. 일본군 측에서 생포된 것은 선원 단 한 명뿐이었으며, 여기에 한국인 노동자 104명이 포로로 잡혔다. 수비대 나머지 전원은 자신의 진지에서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함대가 치른 값비싼 대가
그러나 실제로 이 전투에서 가장 큰 손실을 입은 것은 육군이 아니라 함대였다. 24일, 일본 잠수함 I-175가 어뢰로 호위항공모함 리스컴베이(Liscome Bay)를 격침시켰다. 함재기용 폭탄이 연쇄 유폭되면서 배는 불과 23분 만에 가라앉았고, 장교와 선원 644명이 함께 물속에 잠겼다.
타라와 앞바다에서는 운이 좀 더 따랐다. 11월 20일 밤, 항공모함 인디펜던스는 마셜 제도 로이(Roi)에서 날아온 일본 폭격기가 발사한 어뢰를 맞았지만, 대형 함정은 어떻게든 기지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아베마마: 총성 없는 승리
아베마마(Abemama)에서는 11월 21일 상륙 작전이 거의 총성 없이 이루어졌다. 잠수함 노틸러스호가 해병 중대를 상륙시켰고, 이들은 방비가 허술한 환초를 아주 쉽게 점령했다. 잠수함의 127mm 함포 사격과 호위 구축함의 지원 사격이 이어진 뒤, 22명으로 구성된 일본군 수비대 대부분은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손쉽게 거둔 승리는, 미군이 마킨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타라와의 처참한 전투에서 입었던 막대한 손실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