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데사 방어전, 그리고 세바스토폴의 포위
키이우 방면의 작전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적은 이미 남부 전선에서 흑해 연안을 따라 진격해 들어왔고, 8월 초에는 오데사를 육상에서 봉쇄했습니다. 오데사의 수비군들은 두 달 넘게 자신들보다 다섯 배 이상 많은 적, 즉 독일 부대의 증원을 받은 루마니아 제4군을 상대로 버텨냈습니다. 이 전투에서 특히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것은 흑해 함대의 수병들이었습니다. 검은 군복을 입은 소련 해군보병대는 적군 병사들 사이에서 '검은 구름'이라는 별명으로까지 불렸습니다.
그리고 크림 반도가 독일군에게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최고 사령부는 비로소 오데사 철수를 결정했고, 도시는 10월 16일에 비워졌습니다.
그러나 적은 이미 크림 반도 깊숙이 진입해 있었고, 11월 초에는 흑해 함대의 주요 기지인 세바스토폴을 육지 방향에서 포위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세바스토폴 공방전은 무려 250일간 이어지며 독일 제11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겨주었습니다.
개전 석 달, 독일군의 성적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그렇다면 동부 전선에서 독일군의 진공이 시작된 지 석 달간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독일군은 광대한 영토를 손에 넣었고, 레닌그라드의 성문 앞에 서 있었으며, 스몰렌스크와 키이우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의 핵심 공업·농업 지대를 장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바로사' 작전의 근본적인 목표는 끝내 달성되지 못했습니다.
독일군이 소련을 경멸적으로 부르던 이름처럼 '진흙으로 된 발을 가진 거상'인 소련군을 단기간에 격멸하지 못했고, 소련을 분할하는 데도 실패하면서 '전격전(블리츠크리크)' 계획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독일군이 침공 초기에 사용했던 기습의 효과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고, 이제 새로운 변수들이 전쟁의 흐름을 좌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양측의 경제력과 도덕적·정신적 잠재력은 결정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