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별도의 독립 벵골국을 만들려던 수라와르디의 계획

별도의 독립 벵골국을 만들려던 수라와르디의 계획

마운트배튼 플랜을 무너뜨리려던 또 하나의 술수

인도 분할 과정에서 로드 마운트배튼의 계획을 바꾸려는 또 하나의 음모가 등장했습니다. 주인공은 당시 벵골의 총리였던 수라와르디였습니다. 벵골에서 벌어진 '직접 행동의 날(Direct Action Day)' 폭동의 주범이었던 그가 간디에게 한 가지 제안을 들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의 계획은 인도 국민회의가 벵골 전체를 하나의 독립국으로 선언하는 데 동의하자는 것이었고, 놀랍게도 간디는 이에 동의했습니다.

사라트 찬드라 보스를 비롯한 벵골 출신 국민회의 지도자들 역시 이 속임수에 걸려들면서 독립 벵골 건국 계획이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힌두 마하사바의 지도자 샤마 프라사드 무케르지 박사가 이 계획의 실체를 폭로하면서 상황은 반전됩니다. 무케르지 박사는 독립 벵골 계획이 곧 벵골 전체를 파키스탄에 편입시키려는 음모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먼저 벵골을 독립국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독립국이 스스로의 독립을 지켜내지 못하게 되면, 그곳의 무슬림 다수파는 나라 전체를 파키스탄의 품에 넘겨버리고 말 것이다."

무슬림 연맹의 음모가 드러나자 간디는 수라와르디에게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벵골 입법의회 의원 4분의 3 이상이 이 계획을 가결해야만 자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간디는 미래의 독립 벵골 입법의회에서 힌두 의원 4분의 3이 찬성하지 않는 어떠한 결정도 무효라는 조건까지 요구했습니다.

무슬림 연맹은 독립 벵골 입법의회의 결정이 4분의 3의 찬성으로 채택된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간디의 요구는 그것과 달랐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힌두 의원들만의 4분의 3 다수였습니다. 더욱이 국민회의 지도자들은 무슬림 연맹의 또 다른 음모도 알게 되었습니다. 벵골 무슬림 연맹이 수라와르디의 도움을 받아 벵골 입법의회 내 불가촉천민(달리트) 출신 의원들을 자신들의 계획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무슬림 연맹의 이번 술수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계획 배후에 숨어 있던 위험한 심리

수라와르디의 이 계획 배후에는 위험한 심리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파키스탄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수라와르디였습니다. 그는 벵골에서 스스로 '파키스탄'을 위한 투쟁을 외쳤고, 캘커타에서 벌어진 '직접 행동의 날' 역시 극도로 잔혹한 방식으로 기획하고 집행한 장본인이 그였습니다.

진나는 구호와 명분의 지도를 담당했을 뿐, 실제로 그것을 땅 위에 구현한 것은 수라와르디 같은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파키스탄 건국의 시기가 다가오자 수라와르디는 발밑에서 땅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델리에서 정치를 해온 무함마드 알리 진나, 리아카트 알리 칸, 차우두리 무함마드 알리, 압둘 랍 니슈타르 같은 지도자들은 파키스탄 수립 후 카라치를 비롯한 서파키스탄의 도시들에 자리 잡고 정치를 이어갈 처지였습니다.

반면 동벵골과 그 지도자들의 지위는 열등한 '2류 지도자'로 전락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라와르디는 간디에게 제안한 이 계획을 통해, 서파키스탄 중심의 새 질서에서 소외될 미래 동파키스탄의 굴레를 피할 탈출구를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역사가 모즐리는 이와 관련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수라와르디는 독립 벵골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마지막 시도를 했다. 파키스탄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얻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나는 이미 동벵골의 지도자로 나짐우딘을 선택해 두었다. 수라와르디는 인도에 남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