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세바스토폴 함락 직전, 남은 보급로는 '잠수함'뿐이었다

세바스토폴 함락 직전, 남은 보급로는  잠수함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련 해안군의 위치는 더욱 절박해졌다. 독일군의 끊임없는 공격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소련군은 병력과 물자 양면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예비 병력이 모두 소진된 상황이라 이 손실은 어떤 방법으로도 만회할 수 없었다.

6월 하반기부터 방어부대는 탄약 부족을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독일군의 봉쇄가 갈수록 강화되면서 세바스토폴로 포탄을 운반하는 일도 날로 어려워졌다. 도착하는 물량은 필요량의 3분의 1조차 충당하지 못했고, 월말에는 소련 포병이 근거리 사격만 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전투는 점점 백병전으로 기울었으며, 반격 역시 소수의 기관총 화력과 몇 발의 수류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포병, 박격포병, 전차 승무원들마저 종종 백병전에 투입되었다. 결국 현지 소련군 사령부는 부대에 만(灣) 남안으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편 도시 남교외에서는 붉은 군대가 6월 18일까지 국방군(베흐마흐트)의 얄타 고속도로 침투 시도를 모두 격퇴했고, 독일군은 이 방면에서 미미한 진전만을 거두었다. 독일군이 소련군을 역(驛)과 잉케르만 도로 쪽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한 것은 6월 28일에야 비로소였다.

공중 지원을 잃고도 꺾이지 않은 저항

6월 말에 이르러 세바스토폴의 방어자들은 극심한 위기에 몰렸다. 적에게 상당한 손실을 안겨주었지만, 소련 부대 역시 큰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세바스토폴 방어구역의 항공부대는 코카서스의 비행장으로 철수해야 했고, 지상 부대는 제공 지원 없이 홀로 남겨졌다. 대공포 역시 탄약 부족으로 침묵했다. 이제 루프트바페(독일 공군)가 두려워할 것은 오직 보병의 소화기 사격뿐이었다. 남아 있는 포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보병은 사실상 포병 지원 없이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그럼에도 소련 군인들은 빈약한 전력과 바닥을 드러낸 탄약 보유량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진지에서 영웅적인 저항을 계속해 나갔다.

마지막 증원, 그리고 잠수함만이 남긴 항로

6월 26일, 마지막 증원 부대인 제142보병여단이 군함을 통해 도착했다. 이후로는 병력, 탄약, 식량 모두 잠수함을 통해서만, 그것도 극히 제한된 양으로 세바스토폴에 도달할 수 있었다.

6월 28일 밤부터 29일 새벽 사이, 독일군은 연막에 가려 북만(北灣)을 건너 남안에 진지를 구축했다. 29일 아침, 독일군은 페디우힌과 노비예 술라 고지에서 북서쪽 사푼 산 방향으로 맹공을 퍼부었고, 그곳의 소련군 방어선을 돌파했다.

6월 30일, 공격 개시 24일째 되는 날 독일군은 마침내 세바스토폴로 통하는 길을 열었다. 그날 저녁부터 최후의 후퇴가 시작되었고, 이 철수는 7월 3일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