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250일의 항전, 세바스토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대철수

극한 조건 속에서 벌어진 대철수

250일의 항전, 세바스토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대철수

소련 해안군의 철수는 극도로 험난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다. 붉은 군대가 독일군의 정면 공격을 막아내느라 바빴던 만큼, 배에 탑승하는 거점들은 시시각각 적의 포화에 시달려야 했다. 여기에 더해 군 사령부에는 이 거점들을 독일 공군(루프트바페)의 공습으로부터 지켜낼 어떤 수단도 없었다.

결국 철수 작전에는 가용한 모든 자산이 총동원되었다. 소해함, 초계정, 잠수함, 그리고 항공기까지 투입되었지만, 그마저도 모든 병력을 안전지대로 옮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부 수비대원들은 필사적으로 산악 지대로 돌파하는 데 성공했고, 그곳에서 게릴라 부대로 재편성되어 끝까지 저항을 이어갔다.

250일의 방어전이 남긴 전략적 유산

250일간 이어진 세바스토폴 방어전은 결국 철수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전투는 집단적 영웅심과 개개인의 희생 정신이라는 전례 없는 모범으로서 역사에 길이 기록된다.

세바스토폴 수비대의 길고 완강한 저항, 그리고 적에게 안겨준 막대한 피해는 독일 최고사령부의 계획에 크나큰 차질을 빚었다. 1941년 가을, 세바스토폴은 상당 규모의 독일 부대들을 한자리에 묶어두었고, 이는 독일군의 캅카스 정복 계획이 좌초되는 데 일조하였다.

1941년 11월 소련군이 로스토프에서 반격에 나섰을 때, 독일군은 제11군에서 병력을 차출해 제1기갑군을 증강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나아가 1942년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서도 이 제11군을 소련 전선 남부 방면에 대한 공세에 투입할 수 없었다. 제11군이 비로소 자유롭게 운용될 수 있게 된 것은 7월 초였지만, 이미 세바스토폴 포위전으로 크게 소진된 상태여서 보충병력과 긴 휴식이 절실했다.

영웅주의의 상징이 되다

세바스토폴 수비대의 용감한 투쟁은 붉은 군대 전체와 소련 인민 모두에게 훌륭한 영웅주의의 본보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