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 가을부터 이어져 온 세바스토폴 공방전은 1942년 여름, 결정적 국면을 맞이한다. 케르치에서의 패배는 세바스토폴 방어군, 즉 페트로프(I. Ye. Petrov) 장군이 지휘하는 해안군(연해군)의 상황을 크게 악화시켰다. 6월 초 기준 이 부대는 보병 7개 사단, 여단 4개, 해병연대 2개, 전차대대 2개, 장갑열차 1개 편성으로 총 10만 6천 명 이상, 화포 600문과 박격포 100문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차는 겨우 38대에 불과했고, 세바스토폴 인근 비행장에 배치된 항공부대가 즉시 운용 가능한 항공기는 고작 55대에 지나지 않았다.
만슈타인의 제11군과 거인 열차포 '도라'
케르치 작전이 마무리되자 독일 최고사령부는 제11군 병력 가운데 보병 10개 사단 가까이를 세바스토폴 일대에 집결시키고, 최대한 빨리 도시를 점령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공격 준비를 위해 대규모 포병 화력이 전선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11군 사령관이었던 에리히 폰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 대장의 회고에 따르면, 결정적 타격을 담당한 제54군단은 무려 120개 포병중대의 지원을 받았으며, 그중 56개는 구경 190~420mm에 이르는 중포 및 초중포였다. 여기에 구경 615mm의 자주식 초중박격포('카르트' 장치) 1개 중대와, 철도 차량에 얹혀진 거구 800mm 열차포 '도라(Dora)'까지 투입되었다. '도라'는 총중량 약 1,350톤에 달하는 세계 최대급 화포로, 이 공성전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되었다.
공세 개시 시점까지 독일군은 추가로 다수의 전차와 항공기를 확보해 두었다. 만슈타인이 이끄는 독일군 전체 전력은 병력 20만 4천 명, 구경 76~420mm 화포 670문, 대전차포 655문, 박격포 720문, 전차 450대, 항공기 600대에 달해 방어군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해상 봉쇄로 조여오는 보급망
세바스토폴에 대한 해상 봉쇄를 위해 적은 크림반도의 여러 항구들, 즉 아크메체트, 옙파토리야, 얄타에 어뢰정 19척, 순찰정 30척, 잠수함 추격함 8척을 배치하고, 선박 공격 특별 훈련을 마친 폭격기 150대를 집결시켰다. 어뢰정들은 주로 얄타에 정박하여 세바스토폴 요새 진지를 외부와 연결하는 주요 보급선을 위협할 수 있는 위치를 점했다.
독일군의 이러한 조치는 수비군에 대한 보급을 극도로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에 소련 측은 흑해 함대의 고속 선박 상당수를 동원해야 했고, 북캅카스 전선 소속 수송항공연대까지 투입했다. 나아가 잠수함까지 세바스토폴로 탄약, 연료, 식량을 운송하는 데 동원될 정도였다.
6월 7일, 총공세 개시
6월 2일, 만슈타인은 항공 폭격과 포격을 결합한 공습을 개시해 5일간 밤낮없이 이어갔다. 이어 6월 7일 아침, 그는 보병부대를 공격에 투입했다. 주공은 카미실리-베벡(Kamyshly-Belbek) 지역으로 향해 북만(北灣) 동쪽 끝 방향을 겨냥했고, 차공은 얄타 고속도로를 따라 이루어졌다. 독일군은 이 두 갈래의 협공 작전이 소련군을 분단하고 포위한 뒤 각개격파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 기대했다.
진통을 겪는 독일군 공세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루프트바페는 하루 600~1,000소티를 내리갈았고, 독일 포병은 소련군 진지에 끊임없이 포탄을 쏟아부었다. 공세 첫날 국방군은 소련 방어선을 한 지점에서나마 살짝 뚫는 데 성공했다. 이후 며칠간 독일군은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멈추지 않았으나, 소련의 보병과 해병, 포병, 박격포 승무원들은 저지 진지를 끝까지 고수했다.
만슈타인은 훗날 회고록에서,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얻은 전과에도 불구하고 6월 중순 무렵에는 공세의 귀추가 실처럼 가늘게 매달려 있었다고 인정했다. 독일군의 공격력은 눈에 띄게 둔화된 반면, 소련군은 여전히 약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독일 최고사령부는 세바스토폴 포위 부대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케르치 반도에서 제45보병사단을 차출했고, 6월 하순부터는 돈바스 지역에서 작전 중이던 제17군 예하 여러 부대의 일부를 이곳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증원에도 불구하고 세바스토폴의 함락은 1942년 7월 초에야 완성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독일군은 예상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