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도적인 전력 차이
1942년 여름, 크림반도의 요새 도시 세바스토폴을 방어하기 위해 소련 연안군은 약 106,000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이들은 600문의 각종 화포와 약 100문의 박격포, 그리고 38대의 전차로 무장했으며, 외곽 방어 비행장에는 사용 가능한 항공기 55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반면 이를 공격하는 독일 제11군은 204,000명의 병력에 76mm에서 800mm에 이르는 다양한 구경의 포 670문, 박격포 450문, 전차 720대, 항공기 600대를 보유한 강력한 부대였다. 여기에 더해 독일군은 얄타, 옙파토리야, 테오도시아에 기지를 둔 연안 군함들을 동원하여 도시를 바다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려 했다.
총공세의 개시
5일간의 집중적인 포격 준비와 폭격이 끝난 직후인 6월 7일 아침, 첫 돌격 부대가 행동에 나섰다. 주공은 제54군단에게 맡겨져 벨베크-카미슐리 방면에서 가해졌고, 제30군단 역시 얄타 고속도로를 따라 압박을 계속했다.
독일군은 적 전선을 무너뜨린 뒤 방어선을 조금씩 잠식해 나가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군의 저항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격렬했다. 공격부대는 일부 지역에서 국지적인 성공을 거두는 데 그쳤고, 진격은 곧 정체되었다.
북만 돌파와 도시의 함락
독일군이 북만(세베르나야 만)까지 돌파하는 데는 제17군에서 차출된 증원부대가 도착한 뒤인 6월 18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6월 23일, 러시아군은 만 남쪽으로 후퇴하면서 전선을 유지했지만, 이미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탄약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26일 이후에는 어떤 수상 선박도 포위된 도시에 증원병력과 장비를 실어다 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6월 28일 밤부터 29일 사이, 독일군은 북만 남안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7월 3일, 독일군이 드디어 세바스토폴 시내에 진입하자 소련군의 철수 작전이 시작되었다. 수개월간 버텨온 요새 도시는 마침내 독일군의 손에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