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프라이코어(Freikorps): 프리드리히 대왕의 '외인 부대'

프라이코어(Freikorps): 프리드리히 대왕의  외인 부대

경보병 전통이 없던 프로이센 군대

프로이센 군대에는 경보병을 운용해 온 전통이 없었다. 오스만 제국과 맞닿은 국경에서 저격수들을 대량으로 양성해 낸—그 유명한 그렌처(Grenz) 부대를 보유한—오스트리아와 달리, 프리드리히가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프로이센에는 경보병이라 할 만한 부대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프로이센군 경부대의 핵심은 이른바 '자유군단(Freikorps)'에서 나왔다. 외국 용병, 전쟁 포로 출신, 타국 군대의 탈영병들이 주로 이 부대에 배속되었으므로, 부대의 질이 최고 수준은 아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유군단의 편성은 1756년에 시작되었다. 다만 자유군단이 오직 경보병 역할만 수행했다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많은 경우 이 부대들은 일반 열(列)보병으로도 작전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프라이코어는 근대 유럽 군사사 최초의 이중 임무 보병 부대라 불릴 만하다. 7년전쟁에 참전한 22개 프라이코어 각각은 통상 프로이센 귀족 한 명에게 '소속'되어 있었으며, 그 귀족이 부대의 구성, 조직, 무장을 결정했다. 기병만으로 이루어진 부대, 보병만으로 이루어진 부대, 심지어 모든 병과를 갖춘 혼합형 '레기온'도 존재했다.

장교와 병사를 막론하고 이들 인원의 90% 이상은 유럽 각지 출신의 외국인이었다. 특히 장교 대부분은 더 나은 운명을 찾아 자발적으로든 아니면 어쩔 수 없이든 고향을 떠난 하급 귀족 출신 모험가들이었다. 흥미롭게도 프로이센과 교전 중인 국가 출신 병사들마저 자유군단에서 복무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최초의 프라이코어, 드 라 노블 군단

최초의 프라이코어는 1756년 프로이센에 적대했던 팔츠 선제후국 군대 출신 장교 프란시스코 드 라 노블(Francisco de La Noble)이 편성했다. 부대는 처음에 1개 대대 규모였으나, 이후 제2대대와 예거(Jäger) 분견대가 추가되었다. 예거는 강선 소총으로 무장했고, 부대의 나머지 병사들은 가벼운 머스킷(퓌질), 총검, 그리고 짧은 검으로 무장했다. 이 부대는 지휘관의 이름을 따 '프라이코어 드 라 노블'이라 명명되었으며, 전쟁 내내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두 번째 경부대는 혼합 부대로, 후사르 1개 중대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창설자이자 지휘관은 작센 출신 요한 폰 마이어(Johann von Mayer)였다. 처음에는 보병 1개 대대를 보유했지만, 1760년까지 보병 2개 대대, 예거 분견대, 후사르 1개 중대를 갖추었다. 이 부대에는 작센 병사가 많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무너뜨린 프로이센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는 전장에서 부대가 보인 행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1대대는 두 차례나 적에게 포획되었고, 부대 전체의 저항 역시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 같은 이름의 귀족이 작센에서 창설한 프라이코어 칼벤(Kalben)도 사정은 같았다. 이 부대 역시 보병 2개 대대와 후사르 분견대로 확장되었다. 네덜란드인 루도비히 당젤렐리(Ludovic d'Angelelli)가 만든 당젤렐리 부대는 보병 1개 대대를 보유했다.

프랑스인들로 구성된 군단들

'프랑스인' 부대 크로진스키(Krossinho) 역시 보병 1개 대대를 보유했다. 이 대대는 싸움 한 번 없이 오스트리아군에 항복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결국 포획된 대대는 포로 교환으로 돌아왔고, 그 인원들은 폰 우즈(von Woods) 군단 제2대대에 재편입되었다. 1758년에는 폰 라팽(von Rapin) 군단과 폰 우즈(von Woods) 군단도 창설되었다. 두 부대 모두 최종적으로 보병 2개 대대를 운용했으며, 인원은 프랑스인 포로와 탈영병 출신이었다.

퀸투스 이실리우스 군단

1758년 초에는 유명한 프라이코어 디 베르제르(di Verger)가 창설되었고, 같은 해 3월부터는 퀸투스 이실리우스 군단으로 개명되었다. 지휘관은 프랑스 출신 역사가 샤를 기자르(Charles Guisard)였으며, 프리드리히는 그를 '퀸투스 이실리우스'라 불렀다. 이는 기원전 48년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싸운 로마 장교 퀸투스 카이킬리우스의 이름을 변형한 것이었다. 역사 애호가였던 프리드리히는 기자르와 깊은 우정을 쌓았고, 이는 기자르의 군단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베르제르 군단은 최고의 부대 중 하나였으며 거의 늘 프리드리히의 직접 지휘 아래 작전했다. 1761년까지 보병 3개 대대와 예거 1개 중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백작 폰 오르트(von Ord)가 세운 군단도 주목할 만했다. 이 부대는 보병 2개 대대를 보유했다. 또 하나의 혼합 부대는 1759년 프로이센 귀족 폰 트림바흐(von Trimbach)가 창설한 '프로이센 의용군'이었다. 이 부대는 처음에 보병 1개 대대, 예거 1개 중대, 드래군 1개 중대로 구성되었으나, 이후 예거는 척탄병으로 전환되고 보병 제2대대가 신설되었으며, 드래군 연대는 후사르 연대 2개로 교체되었다.

최강의 군단, 폰 클라이스트

1759년에는 유명한 폰 클라이스트(von Kleist) 군단이 창설되었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모든 병과를 갖춘 하나의 레기온이었다. 프라이코어 폰 클라이스트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잘 조직되고 훈련된 군단이었다. 군기를 게양할 영예를 안은 유일한 부대이기도 했다. 보병 2개 대대, 예거 2개 중대, 10개 중대 규모의 드래군 연대, 역시 10개 중대의 후사르 연대, 울란(창기병) 분견대, 그리고 경포병까지 보유했다.

1761년에는 폰 쇼니(von Schoni)의 자유척탄병(Frei-Grenadiere) 군단이 창설되었다. 척탄병 5개 중대와 후사르 3개 중대로 구성되었다. 이에 못지않게 강력한 부대가 바로 '영국 레기온(British Legion)'이었다. 병사들은 유럽 구석구석에서 모여들었으며, 1762년까지 영국이 이 부대의 재정을 부담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 밖에 수명이 짧고 특별히 주목할 만하지 않은 부대로는 드 제네(de Geney)(보병 1개 대대와 후사르 1개 중대), 폰 자슈(von Sasch)(보병 1개 대대와 예거 분견대), '스위스 군단' 헤어(Heer)(척탄병 1개 중대와 소총수 2개 중대), 프랑스계 부케놀(Bequinol)(보병 1개 대대), '외국인 의용군' 라 반디(la Bandy)(보병 1개 대대), 그슈라이(Gshrai) 군단(보병 6개 중대, 드래군 6개 중대), 그리고 혼합형인 '흑색 레기온'(척탄병 3개 중대, 추격병 1개 중대, 드래군·후사르·울란 분견대) 등이 있었다.

프라이코어(Freikorps): 프리드리히 대왕의  외인 부대

군기를 손에 들고 있는 프리드리히 대왕.

프라이코어(Freikorps): 프리드리히 대왕의  외인 부대

폰 쇼니 군단의 장교, 척탄병, 후사르.

프라이코어(Freikorps): 프리드리히 대왕의  외인 부대

드 라 노블 군단의 머스킷 총병과 예거.

프라이코어(Freikorps): 프리드리히 대왕의  외인 부대

최고의 자유군단인 폰 클라이스트 군단의 드래군과 보병, 그리고 (배경의) 장교.

프라이코어(Freikorps): 프리드리히 대왕의  외인 부대

'흑색 레기온'의 병사들.

프라이코어(Freikorps): 프리드리히 대왕의  외인 부대

폰 마이어 부대의 병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