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토뉴 포위전: 독일군의 공세와 미군 방어선의 형성
1944년 12월 20일과 21일 양일간 독일군은 점차 강도를 높여가며 일련의 공격을 감행하면서 바스토뉴(Bastogne)에 대한 압박을 이어갔다. 그러나 맥컬리프(McAuliffe) 준장 휘하 병력은 이 공격들을 성공적으로 격퇴했으며, 그 과정에서 도심 중심지로부터 약 2,750미터 떨어진 지점에 방어 둘레(perimeter)가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바스토뉴 서쪽 만드생테티엔(Mande-Saint-Etienne) 방면에서는 북서쪽으로 약 2,000미터에 걸쳐 돌출된 구역이 형성되어 있었다.
패튼의 지원 부대, 포위망 앞에서 좌절하다
제101공수사단에 대한 전차 지원은 북쪽으로 진격 중이던 조지 S. 패튼(George Patton) 중장의 제3군 소속 제10기갑사단 전투단(Combat Command)이 맡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부대는 바스토뉴가 완전히 포위되기 전에 도시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맥컬리프의 손에 남은 것은 버트 에젤(Bert Ezell) 대위가 지휘하는 제10기갑사단 전투단 B(CCB) 분견대 소속의 소수 장갑 차량뿐이었다.
맥컬리프는 자신의 측면에서 군단 규모의 주력 부대가 원호 작전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고 믿고 있었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달랐다. 미군 측에서조차 이 사실을 인식한 것은 하루가 지난 뒤였다. 즉, 12월 20일부터 바스토뉴는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채 홀로 적진 한가운데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제101공수사단의 방어 배치
방어 둘레의 배치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동쪽 구역은 제501낙하산보병연대가 담당했다. 여기서 시계 방향으로 돌아보면, 남쪽에는 제327글라이더보병연대 소속 두 개 대대가 자리 잡았고, 이 연대의 제3대대는 서쪽의 돌출부(salient)를 방어했다. 북쪽 둘레는 제502낙하산보병연대가 맡았으며, 북동쪽 구간은 제502연대와 제501연대 사이를 제506낙하산보병연대가 각각 책임졌다.
시내에 남은 기갑 전력
한편 바스토뉴 시내에는 사단 사령부가 자리했고, 여기에 제9기갑사단 전투단 R(CCR)과 제10기갑사단 전투단 B(CCB)가 함께 위치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