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잉 최초의 단엽 전금속 전투기
보잉 P-26 '피슈터(Boeing P-26 Peashooter)'는 미국 전투기 부대에 최초로 정식 배치된 단엽·전금속 구조의 전투기다. 1931년 '모델 248'이라는 명칭으로 설계가 시작되었고, 시제기는 1932년 첫 비행에 성공했다. 양산형은 P-26A가 최초였으며, 이후 프랫 앤 휘트니 R-1340-33 엔진을 장착한 P-26B 2대가 제작되었고, 카뷰레터 등 여러 개량이 반영된 P-26C가 뒤를 이었다.
개방형 조종석과 고정식 착륙장치를 갖춘 이 기체는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식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후로 다양한 전선에서 싸웠다. 전쟁 전 P-26은 미 육군 항공대의 최소 25개 중대에 배치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기종이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곳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P-26C 11대를 도입해 제3추격단 산하 제17중대에 배속시켰다.
중일전쟁, 하늘 위의 불굴의 싸움
1937년 8월 15일, P-26 8대가 일본 해군 미쓰비시 G3M '넬(Nell)' 폭격기 28대를 요격하기 위해 출격했다. 수적 열세에 더해 훈련 부족과 열악한 장비까지 겹친 상황에서 중국 조종사들에게 이 공중전은 극히 험난한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중국군 P-26 편대는 자체 손실 없이 폭격기 3대를 격추하는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P-26이 마주한 상대는 일본 해군의 최신예 함재기 미쓰비시 A5M이었다. A5M은 속도와 기동성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지만, 피탄에는 의외로 취약한 면모도 있었다. 존 '버팔로' 황(8회 격추, 1회 공동 격추)과 존 웡 판양(13회 격추) 같은 중국 에이스들도 P-26을 몰고 A5M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결국 모든 P-26이 전투에서 소진되었고, 그 자리는 영국산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가 대신했다.
한편 스페인 공화국 공군도 평가 목적으로 1대를 도입했으나, 스페인 내전 초반에 격추되고 말았다. 미국 본토에서는 파나마 운하 방어 임무에 P-26 9대가 배치되어 운용되었지만, 정작 적과 조우할 기회는 없었다.
진주만 공습과 필리핀 방어전
P-26은 태평양 전쟁 초기에도 실전에 참여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 당일, 필리핀에는 28대의 P-26이 남아 있었으나 실제 작전 배치된 기체는 필리핀 육군 항공대 제6추격중대 소속 12대뿐이었다. 헤수스 빌라모르(Jesús Villamor) 대위의 지휘 아래 이들은 일본의 미쓰비시 A6M '제로'와 맞붙었다.
필리핀 조종사들은 일본기 4대(제로 3대, G3M 1대) 격추를 주장했으며, 그중 2대는 빌라모르 대위 본인의 전과였다. 그러나 이 성과는 짧은 광명에 불과했다. 곧 일장기를 그린 신예 전투기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면서 P-26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고, 결국 일본군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종사들 스스로 지상에서 기체를 파괴했다.
F/A-18 슈퍼 호넷 이전 보잉의 마지막 전투기
1942년 과테말라는 P-26 7대를 구매해 1956년까지 운용했으며, 1954년 과테말라 군사 쿠데타 당시에도 실전에 투입되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P-26이 2002년 F/A-18E/F 슈퍼 호넷이 실전 배치되기 전까지 보잉이 납품한 마지막 전투기였다는 점이다. 프로펠러 시대의 기체가 무려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보잉 전투기 계보의 '마지막 페이지'로 남아 있었던 셈이다.
주요 제원
기종: 단발 단좌 전투기
전장: 7.19m
익장: 8.5m
전고: 3m
날개 면적: 23㎡
자체 중량/최대 중량: 996kg/1,224kg
엔진: 프랫 앤 휘트니 R-1340-27 와스프 9기통, 600마력, 2엽 고정피치 프로펠러
최고 속도: 시속 377km
항속 거리: 560km
상승률: 분당 719피트(약 219m)
무장: 7.62mm 기관총 2정 또는 7.62mm 1정 + 12.7mm 1정, 30kg 폭탄 2발 또는 14kg 대인 폭탄 5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