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G.T.L. 전투단, 서쪽에서 파리로 입성하다

G.T.L. 전투단, 서쪽에서 파리로 입성하다

1944년 8월 23일 저녁에 하달된 명령은 차례로, 당시 대령 계급이었던 드 랭글라드(Colonel de Langlade)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 약자를 딴 전투집단 G.T.L.(Groupement Tactique « L »)의 지휘관이었다. 다음은 그가 발령한 작전 명령서이다.

작전 명령 제1호

제2기갑사단 · 전투집단 « L » · 참모부(제3국)
1944년 8월 25일 · 지휘소 · 오전 9시 30분

1. G.T.L.의 임무

2. 결심

A) 세브르 다리 거점 — 미뇽네(Minjonnet) 중대장이 자신의 참모부와 함께 지휘한다.

— 병력
— 아르구(Hargous) 중대
— 제12 아프리카엽병연대(R.C.A.) 경전차 부대 및 미군 제102 기병중대
— 센 강 우안의 T.C.I.(임시로 제3중대 포함)

— 임무:
1. 세브르 다리 동측과 서측 교두보를 확보한다.
2. 베르사유 방면으로 수시 정찰대를 파견하여 다음과의 연계를 모색한다.
  a) 북서쪽에서 베르사유로 진격 중인 미군 사단
  b) 남서쪽에서 베르사유로 향하는 레미(Rémy) 부대

B) G.T.L.의 나머지 병력 — 전 병력을 하나로 묶어 전진한다.
주 진로: 세브르 다리 → 생클루 문(Porte de Saint-Cloud) → 미켈랑주 대로 → 모차르트 대로 → 라퐁프 거리 → 빅토르 위고 대로
제1 목표: 에투알 광장(place de l'Étoile) / 제2 목표: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

전투 편성

1. 마쉬(Massu) 소집단 — 참모부(E.M.)와 함께
— 보르(Bort) 중대
— 제11 샤드행진연대(R.M.T.)
— 해병장갑척탄병연대(R.B.F.M.) 전차소대 1개
— 제40 북아프리카포병연대(R.A.N.A.) 포병대

2. 예비대 — G.T.L. 지휘관 대령 직할
— G.T.L. 전방 지휘소
— 중대 분견대
— 생트마리(Sainte-Marie) 중대장이 지휘하는 제4 해병장갑척탄병연대(R.B.F.M.). 즉각적인 호위와 G.T.L. 후방 경비를 위해 제2/1 식민지행진연대(R.M.S.M.)의 스파히(spahis) 중대를 배속한다.

3. 이동 개시: 정오 12시

4. 위생중대

오튀유(Auteuil) 지역 병원 시설에 진입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세브르 다리 거점의 보호 아래 대기한다. 제3위생중대(C.M.)장은 가능한 한 조속히 설치 명령을 하달하고, 적십자기의 보호를 받으며 이동을 실시한다.

전투집단 « L » 지휘관 대령 드 랭글라드
서명: 랭글라드

정오, 세브르 다리를 건너다

정오 12시가 정확히 울릴 때, 나는 조카 르라쎄르(Le Lasseur)의 운전으로 세브르 다리를 건너 생클루 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뒤에는 F.F.I.(프랑스 내지군)가 나를 맞이하러 보낸 로랭크뤼즈(Lorrain-Cruze) 중령이 동승하고 있었다. 밤사이 그의 명령으로 진로에 세워졌던 바리케이드들은 이미 철거되어 있었다. 그런데 훨씬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 로랭크뤼즈가, 당시 내가 전혀 몰랐지만, 혼인 관계로 나와 가까운 친척이었다는 것이다!

이 승리의 파리 귀환은 가족과 함께한 만큼 남다른 감회를 안겨 주었다.

에두아르바양 대로에서는 보르(Bort) 중대가 내 앞서 진행하고 있었다. 군중들이 병사들을 뜨겁게 환호했다. 환영의 열광이 곳곳에서 너무나 격렬하게 터져 나와, 사고 없이 우리의 진로를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잠시 걱정될 정도였다.

모차르트 대로의 어느 지점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처럼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밀려오는 엄청난 인파에 우리는 멈춰 섰다. 그때 도보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마쉬를 발견했다.

G.T.L. 전투단, 서쪽에서 파리로 입성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헬멧의 딱딱한 챙에 가로막힌 고뇌에 절은 얼굴이, 분명 '만나는 첫 프랑스 병사에게 꼭 입맞춤을 하겠다'고 맹세한 듯한 수많은 여인들이 뺨에 남긴 립스틱 자국 아래로 온통 덮여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