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스페인 내전의 비극: 프랑코를 지원한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코를 지탱한 노골적인 외세의 손길

공화국 정부가 받은 외부 지원이 산발적이고 변동이 심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프랑코 군대가 실제로 마주한 지원은 막대하고도 노골적이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뚜렷한 이념적·전략적 이유에서 1936년 11월 18일 프랑코 정부를 공식 승인했다. 전장에 그들이 개입하지 않을 리 만무했다.

독일: 콘도르 군단과 전격전의 예행연습

독일의 핵심 기여는 '기술자'와 항공기 파견이었다. 수는 많지 않았지만 콘도르 군단(Condor Legion)에 배속된 장비들은 당대 최신식이었다. 공중전에서 독일 융커스(Junkers) 전투기는 구식 공화군 브레게(Breguet)기를 손쉽게 압도했다. 해상에서는 전함 도이칠란트(Deutschland)호가 국민파에 무기를 실어 나르던 독일 선박 카메룬(Kamerun)호의 통항을 확보하기 위해 공화국 순양함 리베르타드(Libertad)에 포문을 열었고, 이 해전은 곧 그라프 스페(Graf Spee)호에 의한 알메리아 항구 포격으로 이어졌다.
독일 '전문가'들의 카탈루냐 전역 참전과 실제 목표물에 대한 급강하 폭격은 훗날 폴란드와 프랑스를 상대로 벌어질 전격전(블리츠)을 위한 완벽한 예행연습이 되었다. 약 1만 6천 명의 독일인이 국민파 진영에서 전투 또는 지원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집계된다.

이탈리아: 5만 대군과 막대한 군수 물자

이탈리아의 개입은 훨씬 더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 지브롤터 해협에서 시작해 발레아레스 제도, 과달라하라, 토르토사, 바르셀로나, 산탄데르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작전 지역 거의 전역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탈리아 파병 병력은 약 5만 명에 달했으며, '리토리오(Littorio)' 사단과 '흑색 화살', '청색 화살' 부대 등 정규 편제 부대로 조직되었다. 여기에 아일랜드인 수백 명과 수천 명의 포르투갈인이 '비리아투(Viriato)' 군단이라는 이름으로 합류했다.
또한 이탈리아 정부는 국민파에 경이로운 규모의 군사 물자를 제공했다. 대포 2,000문, 자동화기 1만 정, 소총 20만 자루, 항공기 800대, 폭탄 1,700톤, 탄약 1,000만 발은 물론, 수천 대의 트랙터와 각종 차량까지 포함되었다.

유명무실해진 비개입, 강대국들의 비극적 희극

점점 더 많은 외국 병력과 장비가 전쟁에 찢긴 스페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동안, 런던과 제네바의 대표들은 비개입 절차를 놓고 진지한 논의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분쟁에 개입한 국가들에게 런던 비개입위원회는 편리한 외교적 도구에 불과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스페인에 대한 원조를 문제 삼으며 비난을 주고받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원조는 끊지 않았다.
오직 영국과 프랑스만이 통제와 중재에 대한 진심 어린 의지를 보였고, 여러 방안을 내놓았다. 그중 일부는 스페인 항구 연안에서 중립국 감시선이 순찰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실행의 초입 단계에 들어서기도 했다. 한편 국제연맹은 1937년 10월 2일 회기에서 "비개입위원회가 전쟁에 가담한 비(非)스페인인 전투요원 철수 시도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스페인 영토에 실제 군단 단위 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 즉 스페인 내정에 대한 외세의 개입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강대국들이 벌여온 비극적 희극(tragicomedy)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프랑코의 승리를 열망했고, 소련은 그의 패배를 간절히 바랐다. 반면 프랑스와 영국의 여론은 분열되어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공화국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어느 정도 힘을 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