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바이킹은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전사 문화와 무기의 세계

바이킹은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이어진 '바이킹 시대'에 스칸디나비아에 거주했던 노르드족으로, 무시무시한 전사들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바이킹은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전사 문화와 무기의 세계

바이킹은 흔히 '바이킹 시대'로 불리는 시기에 북유럽, 정확히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 살았던 민족입니다. 이 시대는 793년 바이킹들이 잉글랜드 북부의 린디스판 수도원을 습격하면서 시작되었고, 1066년 노르만인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잉글랜드를 정복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바이킹'이라는 단어는 노르드인이 행한 주요 활동 중 하나인 해상 원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이 용어의 어원은 고대 노르드어로 해적 행위를 일삼던 선원들을 가리키던 'Vikingr'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기원을 설명하는 다른 가설들도 존재합니다.

전쟁은 바이킹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했을까?

네, 전쟁은 바이킹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전쟁은 서로 다른 왕국 간의 정치적 동맹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으며, 사회적으로는 전투에서 싸우고 승리한 전사들에게 높은 지위를 안겨주었습니다(전장에서 쓰러진 자 역시 명예를 얻었다고 여겨졌습니다). 또한 약탈을 통해 획득한 물품들은 부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전쟁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바이킹들은 전투에서 전사한 전사들이 노르드 신화에서 가장 강력한 신인 오딘의 궁전인 발할라(Valhalla)에 합류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이 오딘의 시녀이자 신화 속 존재인 발키리(Valkyrie)에 의해 선택받아 오딘 곁으로 가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발할라(표현 자체가 '죽은 자들의 전당'이라는 뜻)에서 이 병사들은 에인헤랴르(einherjar)라고 불렸으며, 하임달의 뿔피리가 울려 라그나로크(Ragnarök), 즉 노르드 신들의 통치와 우주의 종말을 알리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혼돈의 사건이 도래할 때까지 서로 축제를 벌이고 전투를 벌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바이킹에게 있어 자유민이라면 누구나 무기를 소지하고 전사가 될 권리가 있었습니다. 바이킹 전사 훈련은 대개 가정 내에서 이루어졌지만, 귀족 계급인 얄(jarlar)의 경우 경제적 여유 덕분에 더욱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을 받았습니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바이킹이 조직한 일부 전사 집단은 바랑기아 근위대(Varangian Guard)와 대덴마크군(Great Danish Army)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 외에도 베르세르크(berserkir)처럼 두각을 나타낸 특수 전사 집단도 있었습니다.

바랑기아 근위대는 비잔틴 황제의 호위를 맡았던 바이킹 출신 정예 전사 집단입니다. 대덴마크군('대이교도군'이라고도 불림)은 9세기에 현재의 잉글랜드 영토에 있는 색슨 왕국들(동앵글리아, 웨식스, 머시아, 노섬브리아)을 침공하고 공격한 덴마크인들의 거대한 군대였습니다.

베르세르크는 몸에 아무런 방어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미친 듯이 싸우는 것으로 큰 명성을 얻은 특수 전사 집단이었습니다. 이러한 '광기'는 오딘에 대한 샤머니즘 의식(트랜스나 황홀경이 특징인 의식)과 직접 연관되어 있으며, 이 집단의 이름은 곰을 언급하는 고대 노르드어 용어 혹은 '상의가 없다'는 표현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바이킹의 전투 무기

많은 사람들이 바이킹이 전쟁에서 도끼만을 사용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도끼와 함께 검도 매우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 외에도 칼, 창, 활과 화살 등이 중요한 무기였습니다(다만 검과 도끼만큼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방어를 위해서는 나무 방패, 얼굴을 보호하는 투구, 그리고 몸통을 보호하는 사슬 갑옷을 사용했습니다.

  1. 검: 바이킹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군사적 중요성뿐 아니라 검은 소유자에게 높은 지위를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그 높은 가격 때문에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소유자의 재정 상태가 좋을수록 검은 더 화려하게 장식되었습니다. 검을 지닌 전사들은 검에게 애착을 느껴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바이킹이 사용한 대부분의 검은 스칸디나비아 현지에서 생산되었지만, 프랑크족이 만든 검도 사용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2. 도끼: 값이 저렴했기 때문에 전사들 사이에서 더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도끼는 바이킹의 일상생활에서도 사용되었기에, 많은 전사들이 이 무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습니다. 도끼는 백병전에서도 사용될 수 있고 멀리 던지는 용도로도 활용되었습니다.

  3. 창: 매우 깊은 종교적·상징적 의미를 지닌 무기였습니다. 전투 전마다 바이킹들은 오딘의 은총을 구하기 위해 창을 던지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오딘이 전쟁의 신이었고, 오딘의 주무기가 굉니르(Gungnir)라 불리는 창이었기 때문입니다.

  4. 칼: 근접 전투에서 사용되었습니다.

  5. 활과 화살: 약탈 공격과 해상 전투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전쟁에서 바이킹의 주요 방어 수단은 나무 방패였습니다. 바이킹의 방패는 금속 띠로 보강되기도 했습니다. 얼굴 보호를 위해서는 코까지 덮는 보호대가 달린 원뿔형 금속 투구를 착용했습니다. 특히 강조할 점은, 영화·만화·게임 등 대중문화에서 흔히 묘사되는 것과 달리 바이킹 투구에는 뿔이나 날개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이킹 사회에서 여성도 전사가 될 수 있었을까?

대중문화에서는 바이킹 여성이 전사가 되어 전장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다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관련 자료들이 상충되어 많은 불확실성이 남아 있습니다. 노르드인이 남긴 전설적 기록에는 싸웠던 여성들이 여러 명 묘사되어 있지만, 역사적 기록에는 이를 입증할 만한 사실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더욱이 고고학적·골학적(뼈 연구) 증거 역시 여성 전사에 대한 뚜렷한 단서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역사학자들은 실제로 일부 여성이 전사가 되긴 했지만, 그것이 바이킹 사회 내 여성에게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