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무도 없는 섬 공격에 500명 피해? 미 해병대의 가장 굴욕적인 승리, 키스카 전투

제목이 모순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승리'와 '굴욕'이 한 문장에 함께 있다니 말이죠.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알류샨 열도의 키스카 섬 전투는 군사사에서 가장 기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결말은 어느 쪽에게도 영광스럽지 않았습니다.

키스카 섬, 미국 영토 한복판에 놓인 일본의 발판

키스카(Kiska)는 알류샨 열도의 쥐섬(Rat Islands)에 속한 작은 화산섬입니다. 1867년 미국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 본토와 서부 도서 지역을 매입하면서 키스카 섬도 함께 손에 넣었습니다. 눈과 안개에 덮인 이 외딴 섬이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른 것은 1942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미드웨이 작전의 우회 수단이 된 알류샨

1942년 야마모토 제독은 미드웨이 제도에 대한 기습 공격을 명령했습니다. 목표는 미국의 힘에 맞서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었죠. 이 대작전 내에는 우회 작전으로 키스카와 애투(Attu) 섬을 점령하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미드웨이 해전의 결과는 잘 알려져 있듯 일본의 참패였지만, 알류샨 방면의 우회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1942년 6월 6일, 일본 해군은 군인 9명, 중위 1명, 그리고 그의 군견뿐인 초라한 수비대가 지키던 키스카 섬을 점령했습니다. 눈으로 덮인 작은 화산섬 하나였지만, 이 섬의 상실은 미국의 자존심에 박힌 가시가 되었고, 무엇보다 미국 대륙의 땅과 매우 가깝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섬 공격에 500명 피해? 미 해병대의 가장 굴욕적인 승리, 키스카 전투

키스카(Kiska)로 출발하는 연합군 부대

병력 34,426명, 함정 95척 — 그리고 아무도 없는 섬

이후 몇 달 동안 키스카 섬과 애투 섬은 연합군의 끊임없는 포격을 받았고, 1943년 8월 15일 드디어 섬 탈환을 위한 지상 작전이 개시되었습니다. 투입된 전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연합군 34,426명 — 약 5,000명의 캐나다군을 포함하며, 나머지는 미 해병대
  • 함정 95척 — 전함 3척, 순양함 2척, 구축함 19척 포함

그런데 이 막강한 병력이 마주한 것은... NOBODY, 아무도 아니었습니다. 일본군은 며칠간의 악천후로 미국 정찰기의 비행이 불가능하고 짙은 안개가 섬을 덮은 틈을 타, 이미 조용히 철수한 뒤였습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적 한 명 없이 섬을 되찾았음에도 연합군은 사망자 200명, 부상자 300명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원인은 아군 오사(誤射), 일본군이 남기고 간 부비트랩, 그리고 항구에서 기뢰에 부딪혀 폭발한 구축함 USS 애브너 리드(USS Abner Read)까지 — '승리'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처참한 대목입니다.

키스카 섬 전투는 오늘날까지도 '정확한 정보 없이는 완벽히 준비된 대규모 작전도 무너질 수 있다'는 교과서적 사례로 회자되며, 태평양 전쟁의 숨은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출처 및 이미지: Canadian Heroes, McClatchy, Fin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