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1해병소총연대(1er RFM) – 자유 프랑스의 전설적인 기갑 정찰 연대

제1해병소총연대(1er RFM) – 자유 프랑스의 전설적인 기갑 정찰 연대

1940년 창설된 제1해병소총대대는 자유 프랑스(Free France) 작전에 처음부터 참여한 부대입니다. 다카르 상륙 작전의 좌절부터 레반트 지역 전투까지 치열한 시기를 거쳤으며, 이후 대공 대대로 개편되어 비르하켐(Bir Hakeim) 요새 진지의 대공 방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북아프리카 전역 내내 몽고메리 장군의 영국 제8군과 함께 제1자유프랑스사단(1re DFL)의 행보를 따랐고, 1943년에는 사단 소속 기갑 정찰 연대로 재편되었습니다.

제1해병소총연대(1er RFM) – 자유 프랑스의 전설적인 기갑 정찰 연대

창설

1943년 9월 24일, 북아프리카 해군 출신 자원병들(특히 무선 통신병과 정비병)로 병력을 크게 늘린 제1해병소총대대는 제1해병소총연대(1er Régiment de Fusiliers Marins, 1er RFM)로 재편되었으며, 제1자유프랑스사단의 기갑 정찰 부대가 되었습니다. 초대 지휘관은 위베르 아미오 당빌(Hubert Amyot d'Inville) 해군 중령이 맡았습니다. 부대는 미국제 장비, 특히 M3 스튜어트 경전차로 무장했습니다.

주요 전역

제1해병소총연대(1er RFM) – 자유 프랑스의 전설적인 기갑 정찰 연대

이탈리아

철저한 훈련을 마친 제1RFM은 1944년 4월 22일 제1DFL과 함께 나폴리에 상륙했습니다. 같은 해 5월 12일부터 시작된, 로마 남부 이탈리아 전역을 가로막은 독일군 방어선 돌파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가릴리아노(Garigliano) 강의 격전 이후, 사단 선봉 세 개 축선에서 활약한 RFM은 몬테피아스코네(Montefiascone)와 라디코파니(Radicofani) 전투에서 빛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아미오 당빌 중령을 포함한 61명이 전사하고 140명이 부상당하는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프로방스 상륙

피에르 드 모르시에(Pierre de Morsier) 해군 중령의 지휘 아래, 부대는 프로방스의 카발레르쉬르메르(Cavalaire-sur-Mer)에 상륙했습니다. 이후 툴롱과 예르(Hyères) 해방 전투에 참여하고, 론 강 유역을 따라 북상하여 독일군이 철수한 리옹에 입성했으며, 이어 오텐(Autun)에 도달했습니다. 사바리(Savary) 중대는 5명 전사, 4명 부상의 격전 끝에 그곳에 진입했습니다. 당시 사바리는 코트도르(Côte d'Or) 지역에서 노르망디에 상륙한 르클레르(Leclerc) 장군의 제2기갑사단 부대들과 연락을 취했습니다. RFM은 이후 보주(Vosges) 산맥을 향해 진격을 계속했습니다.

론 강 유역 – 역사적 합류

1944년 9월 12일, 부대는 샤티용쉬르센(Châtillon-sur-Seine)에서 노르망디에 제2기갑사단과 함께 상륙한 제1스파히 연대(1er régiment de spahis)와 합류했습니다. 이 만남은 노르망디에서 남하한 연합군과 프로방스에서 북상한 연합군이 하나로 이어진 역사적 합류 지점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노쉬르센(Nod-sur-Seine)의 합류 기념비 참조).

오트손(Haute-Saône)

9월 27일, 전차 중대는 클레르구트(Clairegoutte) 공격을 주도했고, 10월 8일 롱샹(Ronchamp)을 점령한 뒤 이듬달에는 베스몽(Vescemont), 루즈구트(Rougegoutte), 로마니(Romagny), 루즈몽르샤토(Rougemont-le-Château)를 차례로 확보했습니다. 이 작전에서는 보카노프스키(Bokanowski) 소위와 바쇠르(Vasseur) 소위가 특히 두각을 나타냈으며, 제1RFM 지휘 하에 배속된 제11기갑-베르코르(11e Cuir-Vercors) 병력들이 해군 병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습니다.

루아양 포위전

보주 전역 이후 제1DFL은 대서양 전선으로 파견되어 루아양(Royan) 포위권 축소 임무를 맡았지만, 곧 긴급히 동부 전선으로 소환되었습니다. 폰 룬슈테트(von Rundstedt)가 1944년 12월 대규모 공세를 개시하면서 이에 맞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알자스

1945년 1월, 해병 소총병들은 알자스의 에르브스하임(Herbsheim)과 로스펠트(Rossfeld)에서 다시 한번 용맹함을 발휘했으며, 승리의 행진을 이어가며 라인 강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알프스

알자스 전선에서 철수한 사단은 1945년 4월 알프스 군 분견대에 배속되어 오티옹(Authion) 고원지대에서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제1기병중대가 특히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이 공세에서 6명의 장교 중 5명을 잃고 참여 병력의 약 50%를 손실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습니다.

훈장과 포상

전투 손실

1940년 10월부터 1945년 5월까지 제1BFM/제1RFM은 연대장 2명을 포함한 12명의 장교를 포함해 총 195명의 장병을 잃었습니다.

수여된 훈장

  • 종군십자장(Croix de guerre) 200개
  • 군사훈장(Médaille militaire) 70개
  • 명예레지온 훈장(Légion d'honneur) 32개
  • 해방십자장(Croix de la Libération) 31개

제1RFM의 군기는 1939~1945년 전쟁 기간 동안 육군 포상 5회를 받았으며, 해방십자장, 프랑스 레지스탕스 메달, 종군십자장이 수여되었습니다.

1945년 8월, 제1RFM은 해군 당국에 정식으로 인계되었습니다.

해방 훈장과 추모

지로마니(Giromagny)에서 전사한 정비병 조르주 브리에르(Georges Brières)는 몽발레리앙(Mont Valérien)에 있는 전투하는 프랑스 기념관 지하 납골당 8번 봉분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해군 장병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전통의 계승

제1해병소총연대의 군기, 추념 행사와 전통은 현재 로리앙(Lorient) 소총학교에 위탁되어 계승되고 있습니다. RBFM(제2해병소총연대)과 함께 이 부대는 조국의 해방을 위해 단련된 프랑스 무기의 가치와 명예를 후세에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