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당시 영국 기갑사단은 두 개의 여단을 축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하나는 혼성 대대 3개로 구성된 경기갑여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형전차 대대 3개로 이루어진 중(重)기갑여단이었다. 이들 전력을 지원하기 위해 보병 대대 1개, 소규모 포병 연대, 그리고 공병 중대로 구성된 수행부대(수행 그룹)가 함께 배속되었다.
편제의 변화: 전차와 보병의 균형
초기에는 전차 대 보병의 비율이 계속 높아져 6대 1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행부대에 보병 대군 1개가 추가로 배치되고, 대전차포와 대공포를 함께 운용하는 혼성 포병 연대가 신설되면서 이 추세는 역전되었다. 아울러 모든 전차 부대에는 이후 중형전차가 지급되어 전투력이 한층 보강되었다.
프랑스 전투 이후의 재편
프랑스 전투(1940년) 이후 기갑사단은 사단 직속 장갑차 대대가 새롭게 배속되며 더욱 강화되었다. 기존의 혼성 포병 연대는 해체되고, 40mm 보포스 대공포로 무장한 연대와 대전차포로 무장한 연대 등 두 개의 독립 포병 연대로 대체되었다. 또한 각 기갑여단에는 자체적인 보병 대대가 배속되어 독립 작전 능력이 향상되었다.
이처럼 가용 자원이 늘어나면서 영국 기갑사단(A.D.)의 수도 점진적으로 증가하여 최종적으로 9개 사단에 도달했다.
1942년 개편: 독일 기갑사단을 닮은 구조로
1942년에는 독일 기갑사단(Pz.Div.)의 편제에 더 가까운 새로운 정원표와 편제표가 채택되었다. 주요 변경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장갑차 대대는 유지되었으며, 기존 두 개의 기갑여단 중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하나는 기계화 보병여단으로 교체되었다.
- 기존의 수행부대는 폐지되었다.
- 대신 포병 화력 지원이 강화되어, 견인식 17파운더 포로 무장한 제2포병 연대가 추가되었고, 이후에는 자주포로 다시 대체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개편을 통해 영국 기갑사단은 전차 중심의 과중한 편제에서 벗어나 전차·보병·포병이 균형 있게 융합된 종합 기동 부대로 발전해 나갔다. 이는 북아프리카 전역 이후 영국 기갑부대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유럽 전선에서 효과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