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북아프리카 전역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미 리비아 식민지를 점령하고 있던 이탈리아가 노린 프랑스령 튀니지부터, 병력이 열세였던 영국령 이집트까지가 그 무대였습니다. 무솔리니는 이 판돈이 승산 있다고 판단했고, 이렇게 시작된 공방전은 나치의 지원이 절실해질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에 나치 독일은 아프리카 원정군, 즉 아프리카 군단(Afrika Korps)을 파견했습니다.
측면에서 적을 돌아갈 수 있는 경로는 해상과, 해안 도로 깊숙이 뒤에 펼쳐진 리비아 사막의 오지 두 곳뿐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전설적인 장거리 사막 부대(Long Range Desert Group, LRDG)가 탄생했습니다. 이 전역은 교전국들의 온전한 관심을 끌었고, 롬멜은 전술적 승리를 거듭하며 진격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전략적 패배를 맞이했습니다. 이 패배는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상륙 작전으로 이어졌고, 그 성공은 다른 연합군이 로마에 입성하던 시점에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랄프 배그놀드, 사막을 아는 사람
랄프 배그놀드(Ralph Bagnold) 소령은 SAS와 더불어 북아프리카 사막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장거리 사막 부대를 창설한 인물입니다. 그는 1896년에 태어나 199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영국 공병대 출신으로, 언제나 아들에게 배움을 권장했습니다. 1915년 랄프는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아 입대하여 제1차 세계대전 기간 3년간 군복무를 수행했습니다.
종전 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학을 공부해 1921년 졸업했고, 곧바로 군에 복귀해 카이로에 배치되었습니다. 사막의 관문에 자리한 이 보직 덕분에 그는 1930년대에 자동차로 사막을 탐사하려던 야망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1935년 군에서 제대한 뒤에는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사막에 대한 궁극적인 지식을 쌓으려는 호기심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리비아 사막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으며, 그의 팀은 금속과 자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태양 나침반을 발명했습니다. 수직으로 세운 막대가 수평판 위에 드리우는 그림자로 방향을 가늠하는, 간단하면서도 소박한 장치였습니다. 아울러 그는 눈에 띄는 지형지물 없이 사막을 항법으로 통과하는 기술, 부드러운 모래 위에서 주행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반대편 경사면이 항상 더 가파르다는 점을 감안해 고속으로 사구를 넘는 기술까지 완성했습니다.
이러한 축적된 지식은 리비아 사막 전쟁이라는 결정적 국면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배그놀드는 방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소령 계급으로 현역 소집되었고, 중동 지역 영국 육군 총사령관 웨이블(Wavell) 장군에게 사막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확보한 정보를 전달할 정찰 부대의 편성을 요청했습니다.
'리비아 사막 택시 서비스'의 탄생
당시 다른 고위 장교들은 '사설 부대'에 회의적이었지만, 웨이블 장군은 배그놀드의 요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그는 이 순찰대가 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 것인지, 어떻게 구조할 것인지, 그리고 이탈리아군과 독일군이 가지지 못한 필수적인 사막 전문성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웨이블은 배그놀드에게 6주의 시간을 주었고, 이렇게 탄생한 부대가 바로 적진 한가운데서 영국군의 눈과 귀 역할을 수행하는 '장거리 사막 부대(LRDG)'였습니다.
관측·정찰 임무에 SAS 수송 기능이 추가되면서 부대는 '리비아 사막 택시 서비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체 차량을 보유하기 전에는 르클레르(Leclerc)의 'L 부대'가 차드에서 이탈리아 요새 무르주크(Mourzouk)와 쿠프라(Koufra)를 습격할 때 이 사막 택시의 승객으로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티베스티에 주둔하던 낙타 부대 장교 자크 마쥬(Jacques Massu)는 급유 회합을 위해 자신의 '사막 선박'을 일종의 유조선처럼 활용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배그놀드의 지식은 그 어느 때보다 귀중한 자산이었고, 그는 1941년 『모래언덕의 물리학(The Physics of Blown Sand)』이라는 저술을 내놓을 여유까지 있었습니다. 1941년 7월 대령으로 진급한 그는 군 수뇌부의 회의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카이로의 영국군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평화로운 탐사 시절 우리는 전쟁이 사막 한가운데의 그 거대하고 텅 빈 황량한 땅까지 미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곳은 끝없는 거리, 물 부족, 그리고 통과 불가능한 모래언덕의 바다가 만든 벽으로 막혀 있었으니까요. 장거리 이동과 항법을 위해 우리가 발전시킨 특별한 장비와 기술 중 하나라도 진지하게 쓰이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 랄프 배그놀드
군사 작전
LRDG의 임무는 적들이 통행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험준한 지형을 홀로 항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차량 가용성에 따라 4X2 픽업트럭(4륜구동보다 2륜구동을 선호) 등 개조된 민간 차량과 장비를 필요에 맞게 운용했습니다. 상징적인 차량은 제너럴 모터스가 캐나다에서 생산한 1937년식과 1940년식 쉐보레 30CWT(영국식 명칭으로 1.5톤 적재 능력)였습니다. 이 외에도 더 가벼운 포드 밴은 지휘용으로, 더 무거운 60CWT(3톤 적재 능력) 트럭은 이후 포병과 구난 임무용으로 활용되며 부대는 발전과 변모를 거듭했습니다.
관측 임무에는 완벽한 위장과 긴 시간의 정지 대기가 요구되었고, 가능한 한 전투는 피해야 했습니다. 존재나 통행의 흔적은 철저히 지워야 했습니다. 사막 횡단의 전문성을 갖춘 이 다재다능한 영국 특수부대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부대로서, 남쪽 깊숙한 사막의 관문인 시와(Siwa) 오아시스에 마련된 기지에서 폭넓은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정찰 임무에는 이탈리아군과 독일군 포로의 체포와 심문, 그리고 베두인족으로부터 얻는 정보 수집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LRDG에는 현지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언어 전문가 팀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일부 영국 신사들의 기발하고 엉뚱한 행보는 놀라운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나 친디트(Chindits)를 창설한 오드 찰스 윙게이트처럼, 그들의 '사가'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