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전시 문학: 전쟁의 어둠 속에서 빛난 말의 힘

전쟁의 시대, 문학은 어떻게 무기가 되었을까? 초현실주의의 반항에서 레지스탕스의 시, 그리고 누벨 로망의 부조리까지. 격동의 20세기 전반부를 관통하며 프랑스 문학이 보여준 언어의 저항을 짚어본다.

지평선에 펼쳐진 들판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림자의 물방앗간 위에
나는 그대의 이름을 쓰다 [1]
— 폴 엘뤼아르, 「자유」 중에서

전간기, 초현실주의의 등장

어떤 작가들은 언어의 가치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언어가 지닌 가능성을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고 여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 이른바 전간기에 초현실주의(Surréalisme)라는 문학 운동이 탄생했다. 언어는 꿈과 상상력, 무의식과 비합리성을 적어 내려가는 매체가 된 것이다.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루이 아라곤(Louis Aragon) 같은 시인들은 전통시와 만연한 아카데미즘 앞에서 반란을 갈망했고, 자유를 외쳤다. 이러한 반항 정신은 다다이즘 화가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초현실주의 시 역시 예술의 힘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은 이윽고 무기가 된다. 실제로 공산주의의 영향 아래 있던 초현실주의 진영에서 아라곤과 엘뤼아르 같은 시인들은 레지스탕스(저항 운동)에 몸을 던졌고, 그들의 시행(詩行)은 자유를 향한 희망이 되었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언어는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가치를 지니며, 세상에 헌신하는 단어에는 한계가 없다고.

“나는 꿈과 현실, 이 겉보기에 너무나 모순적인 두 상태가 장래 하나의 절대적 현실, 굳이 표현하자면 ‘초현실(surréalité)’로 융합되리라 믿는다.” [2]
—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선언』

레지스탕스에 헌신한 말들

1939년부터 1944년까지 프랑스는 전쟁 중이었다. 국민들이 조국을 위해 싸우도록 이끈 저항 정신과 같은 마음으로, 아라곤은 시 「행복한 사랑은 없다(Il n'y a pas d'amour heureux)」를 집필했다. 시인은 레지스탕스에 참여하는 자신을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그려낸다.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자유를 믿었고, 조국을 한 여인을 사랑하듯 아꼈기에 위험조차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대가 조국을 사랑치 않듯 나 또한 사랑하지 않으리라.” [3] 침탈당하고 상처 입은 프랑스와 연인 사이에 유비(類比)가 성립하면서, 사랑하는 자의 마음속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그러나 싸움이 패색이 짙어 보일 때면 슬픔이 먼저 찾아온다. 조국은 사랑에 빠진 남자와 같은 유린을 당하고, 봉기하는 이는 ‘무장을 빼앗긴 병사’처럼 처량해진다. [4] 조국을 향한 사랑은 고통을 거쳐야 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투사는 마침내 깨닫는다. 자신의 희생은 값진 것이며, 늘 바라볼 희망이 남아 있기에 일정한 평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설령 그 희망을 시의 마지막 행에서야 겨우 엿볼 수 있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둘의 사랑입니다.” [5] 바로 이 암울한 세월의 끝자락에서 아라곤의 시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시인은 말의 힘을 굳게 믿었고, 그렇기에 갇힌 프랑스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반란으로써 조국에 기여할 것을 격려했다.

어느 맑은 저녁, 우주가 산산이 부서졌다
방화꾼들이 불질러 놓은 암초 위에서
나는 바다 위에 빛나는 엘자의 눈동자를 보았다
엘자의 눈동자
엘자의 눈동자
엘자의 눈동자 [6]
— 루이 아라곤, 「엘자의 눈동자」 중에서

전후, 부조리와 누벨 로망의 시대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외젠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보리스 비안(Boris Vian) 같은 작가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대중을 위해 ‘부조리’라는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10여 년 뒤에는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와 알랭 로브그리예(Robbe-Grillet)가 혁신을 추구하며 새로운 문학 운동, 이른바 누벨 로망(Nouveau Roman, 신소설)을 개척한다. 파편화된 글쓰기, 구두점의 배제, 서사의 선형성 탈피가 특징인 이 운동은 1939년부터 1945년 사이 전 세계에서 자행된 잔혹함이 드러난 뒤 솟구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 심경은 결코 말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다. 부조리에 호소하고, 겉보기에 완결되지 못한 듯한 소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깨닫는다. 문학 역시 무력감의 일부를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 불가능한 것을 표현하라는 명령을 받는 순간, 단어들은 시련에 놓이고 그 목적지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세상은 인간을 돌아보지 않는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