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섬브리아(Northumbria, 라틴어: Northumbria, 고대 영어: Norþanhymbra)는 오늘날 잉글랜드 북부에 위치했던 중세 왕국으로, 앵글로색슨 칠왕국(Heptarchy)을 구성한 주요 왕국 중 하나였습니다. 이 왕국은 특히 니케아 기독교가 섬 전역으로 전파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요크 대주교구를 중심으로 유럽적 위상을 지닌 문화 중심지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그 명성이 높습니다.
노섬브리아라는 이름의 유래와 성립
'노섬브리아'라는 이름은 본래 6세기에 앵글족이 침입하여 정착한, 훔버 강(Humber) 이북의 땅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왕국으로서의 노섬브리아는 7세기 초, 두 개의 앵글족 세력이 통합되면서 탄생했습니다. 북쪽의 버니시아(Bernicia)와 남쪽의 데이라(Deira)가 바로 그 주체였습니다.
노섬브리아의 역사는 대체로 베다 베네라빌리스(Venerable Bede)의 저술을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8세기 초 노섬브리아 출신 수도사였던 베다는 『잉글랜드 민족 교회사』를 남겼는데, 이 책에는 대륙 출신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앵글로색슨인들의 니케아 기독교 개종 과정과, 이후 잉글랜드 성인들의 활동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베다의 시대부터 이미 데이라와 버니시아의 노섬브리아인들은 섬 내 다른 게르만계 주민들과 함께 하나의 민족에 속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왕국의 통합과 기독교 개종
노섬브리아가 처음으로 통합된 것은 7세기 초 버니시아의 애델프리트(Æthelfrith) 왕의 통치 아래였습니다. 그가 616년에 사망하자 경쟁 관계에 있던 처남이자 데이라의 에드윈(Edwin)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이교도였던 앵글족 국왕 에드윈은 627년, 켄트의 기독교 국왕 애델베르트(Æthelberht)의 딸인 아내의 영향과 함께 신부를 따라온 요크의 선교사 파울리누스(Paulinus)의 활동에 힘입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과 개종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633년, 에드윈은 하트필드 체이스(Hatfield Chase) 전투에서 자신이 예전에 정복했던 브리튼인의 왕 카드왈론(Cadwallon)에게 패배하여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이교도를 굳건히 옹호하던 머시아의 펜다(Penda) 왕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기독교 선교사들이 이룩한 진전은 일시적으로 좌절되었습니다.
634년, 버니시아의 오즈월드(Oswald)가 헥스햄 인근에서 카드왈론을 격파하며 노섬브리아를 재통합했습니다. 그는 백성을 복음화하기 위해 아이오나(Iona)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에이단(Aidan)을 불러들였고, 에이단은 린디스판(Lindisfarne)에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이후 이 지역은 스코틀랜드 수도사들에 의해 빠르게 기독교화되었습니다. 오즈월드는 기독교를 적극 후원했으며, 641년 펜다의 손에 순교하면서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머시아와 노섬브리아의 대립은 654년 윈웨드(Winwaed) 전투에서 절정에 달했고, 이 전투에서 오즈월드의 후계자 오스위우(Oswiu)가 펜다를 격파하고 살해함으로써 승부가 갈렸습니다.
노섬브리아의 전성기와 쇠퇴
7세기는 노섬브리아 권력의 절정기를 이룬 시대입니다. 베다는 에드윈, 오즈월드, 오스위우 세 왕이 다른 앵글로색슨 왕국들에 대해 '임페리움(imperium)', 즉 패권을 행사했다고 언급하며 이들을 특별히 조명합니다. 그러나 이미 678년 에그프리스(Ecgfrith) 왕은 트렌트 강 근처에서 머시아인에게 패배했고, 685년에는 넥탄스미어(Nechtansmere) 전투에서 픽트족에게 참패하여 전사했습니다. 이로써 앵글로색슨 세력의 북진은 포스(Forth) 강에서 수 세기 동안 멈춰 섰고, 잉글랜드 남부에 대한 노섬브리아의 지배권 역시 머시아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바이킹의 시대
793년, 잉글랜드에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바이킹 침공은 노섬브리아 해안에 위치한 린디스판 수도원 약탈이었습니다. 당시 왕국은 극심한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알드프리스(Aldfrith) 사망(704년)부터 린디스판 약탈까지 무려 열세 명의 왕이 차례로 즉위했고, 그중 다수가 폭력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866년 11월 1일, 바이킹 '대군(Great Army)'은 노섬브리아의 Ælle 왕과 오스베르트(Osberht) 왕 사이의 내전을 틈타 번영을 누리던 도시 요크를 함락했습니다. 바이킹들은 이곳을 새로운 국가, 즉 바이킹 요크 왕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왕위를 다투던 두 경쟁자는 이에 맞서 동맹을 맺고 867년 요크 탈환을 시도했으나, 원정 도중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 노섬브리아 남부는 덴마크인들이 정착했고, 아일랜드에서 온 노르웨이인들은 계속해서 이 지역을 약탈했습니다.
876년에는 밤버러(Bamburgh) 백작 가문을 통치자로 하는 새로운 버니시아 백작령이 설립되었습니다. 918년에는 로그발드(Rognvald)가 앵글로색슨 노섬브리아를 자신의 요크 왕국에 합병했습니다. 웨식스의 앵글로색슨 세력은 919~920년과 941~944년에 걸쳐 이 지역을 일시 정복했으나, 마침내 954년 요크의 마지막 바이킹 왕이 사망하면서 비로소 완전히 장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휘비 종교회의와 교회 통합
664년, 노섬브리아에서 휘비(Whitby) 종교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중대한 사건은 당시 노섬브리아가 종교 분야에서 차지한 위상을 잘 보여줍니다. 노섬브리아 왕 오스위우의 주도로 켈트(스코틀랜드) 교회 전통과 라틴 교회 전통이 정면으로 충돌했는데, 논쟁의 핵심은 부활절 날짜의 산정 방식이었습니다. 앵글로색슨 교회 탄생 이후 두 교회를 갈라놓았던 이 문제는 라틴 전통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후 스코틀랜드 주교들은 노섬브리아 왕국을 떠났고, 잉글랜드의 탄생을 예고하는 앵글로색슨 교회의 통합이 이루어진 뒤에는 오히려 앵글로색슨 교회가 켈트 지역으로 선교를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오나는 마침내 688년 노섬브리아 출신 선교사 에그버트(Egbert)의 영향으로 니케아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에그버트는 대륙으로 건너가 프리슬란트 선교에도 참여했습니다. 그의 동포인 요크의 윌프리드(Wilfrid)와 위트레흐트의 윌리브로르드(Willibrord)도 그의 발자취를 따랐습니다.
연표로 보는 노섬브리아의 역사
- 604년: 애델프리트에 의한 왕국 통합
- 633년: 하트필드 체이스 전투, 왕국 분열
- 634년: 왕국 재통합
- 642년 8월 5일: 메이저필드(Maserfield) 전투, 데이라 분리
- 655년 11월 15일: 윈웨드 전투, 재통합
- 867년: 노섬브리아가 바이킹 요크 왕국이 됨
- 954년: 노섬브리아의 마지막 바이킹 왕 에릭 1세 사망
이전의 실체
버니시아
데이라
이후의 실체
바이킹 요크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