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백년전쟁의 그림자, 프랑스를 유린한 대용병단(그랑드 콩파니)

백년전쟁과 대용병단의 등장

백년전쟁 시기, 용병들은 전쟁이 한풀 꺾인 평화로운 시기가 되면 '대용병단(Grand Companies)' 또는 '로버(Rovers)'라 불리는 무리를 결성하여 주변 농촌 지역을 약탈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전쟁 중에는 왕족과 귀족에게 고용되어 싸웠지만, 평시에는 약탈과 포로 몸값으로 먹고살았던 것입니다.

당시 대용병단 기사들이 착용했던 전신 판금 갑옷(full plate armour) 가운데는 베르트랑 뒤 게클랭(Bertrand du Guesclin)의 문장을 새긴 것이 전해지며, 특유의 형태를 지닌 투구가 함께 발굴·보존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유린

대용병단은 전시에는 제후들에게 급료를 받고 싸우는 모험가 부대였고, 평시나 휴전 기간에는 약탈과 몸값 강요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이들은 14세기 장 2세(Jean II)와 샤를 5세(Charles V)의 치세에 프랑스 전역을 황폐화했습니다. 구성원은 각국 출신의 외국인들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1360년 브레티니 조약 체결 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가 해고한 독일인 용병들이 상당수를 차지했습니다.

이들의 약탈 행위에 분노한 농민들은 여러 차례 충돌 끝에 대용병단을 격퇴하고 일시적으로 흩어뜨리기도 했습니다.

한편 프랑스 왕국을 이들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프랑스군 총사령관인 원수(connetable) 베르트랑 뒤 게클랭은 이 용병들을 스페인으로 보내는 방책을 강구했습니다. 스페인에서 이들은 '잔인왕'이라 불린 카스티야의 페드로 1세에 맞서, 그의 이복형제인 엔리케 데 트라스타마라(Henri de Transtamare)의 편에 서서 싸웠습니다.

악명 높은 두목들

  • 아르노 드 세르볼(Arnaud de Cervole) — '수도원장(Archpriest)'이라 불림
  • 베티카 드 알브레(Bétucat d'Albret)
  • 베르나르 드 라 살(Bernard de la Salle)
  • 휴 캘벌리(Hugh Calveley)
  • 로버트 놀스(Robert Knolles)
  • 존 크레스웰(John Creswell)

타르브뉘(Tard-Venus)

'타르브뉘'는 1360년 5월 8일 브레티니 조약 체결 이후 해고된 용병들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이들은 쁘띠 메샹(Petit Meschin)과 세갱 드 바데폴(Seguin de Badefol)의 지휘 아래 부르고뉴부터 랑그독에 이르는 지역을 유린했습니다. 1361년에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라마르슈 백작 자크 드 부르봉(Jacques de Bourbon)의 군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백색 용병단(Compagnie Blanche)

백색 용병단(White Company)은 1360년 5월 8일 브레티니 강화 이후, 저명한 잉글랜드 출신 용병队长 존 호크우드(John Hawkwood)의 지휘 아래 결성되었습니다.

가죽 벗기는 자들(Écorcheurs)

해고된 용병 무리는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5세기에 프랑스를 또다시 황폐화하게 된 '에코르쇠르', 즉 '가죽 벗기는 자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프랑스 밖의 대형 용병단

대형 용병단은 프랑스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알모가바르(Almogavres)로 구성된 카탈루냐 용병단(Catalan Company)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아라곤-카탈루냐 왕관을 섬긴 용병 병사들로, 대부분 카탈루냐인과 아라곤인이었습니다. 13세기에서 15세기 사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사라센과의 전쟁 과정에서 등장했으며, 훗날 비잔틴 제국의 안드로니코스 2세 팔라이올로고스 황제를 도와 튀르크에 맞서기 위해 동방으로 향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