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서왕 전설의 호수의 여인 비비안느 — 엑스칼리버부터 멀린의 몰락까지

호수의 여인 비비안느는 누구인가?

요정 비비안느(Viviane), 즉 '호수의 여인(Lady of the Lake)'은 아서왕 전설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이다. 그녀는 전설 속에서 여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아서왕에게 성검 엑스칼리버를 건네주고, 캄란 전투 이후 죽어가는 왕을 아발론으로 인도하며, 위대한 마법사 멀린을 홀려 사로잡거나, 아버지를 잃은 어린 랜슬롯을 호수에서 길러내는 일 등을 맡는다.

작품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린 여인

여러 작가와 필사자들은 호수의 여인에게 저마다 다른 이름을 붙였다. 비비안느, 니니안느(Niniane), 니네브(Nyneve) 등이 바로 그것으로, 이름의 차이만큼이나 그녀의 행적과 역할도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진다.

브로셀리앙드 숲과 랜슬롯의 양육

비비안느는 요정이나 용과 같은 마법의 존재들이 살고 있다 전해지는 브로셀리앙드(Brocéliande) 숲에 살았다. 그녀는 베누아의 왕 반(King Ban de Bénoïc)이 세상을 떠난 직후, 아직 어리던 랜슬롯을 데려갔다. 반 왕은 자신의 왕국이 원수인 황무지의 클라우다스(Claudas de la Déserte)에게 불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에 겨워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비비안느는 랜슬롯을 거대한 호수 깊숙한 곳으로 데려갔다. 소년은 다시는 밖으로 나올 수 없으리라 믿었지만, 사실 그곳은 켈트 전통의 성스러운 섬이자 영혼의 최후 안식처인 숨겨진 마법의 왕국 아발론(Avalon)으로 향하는 필수적인 '통로'였다. 일부 문헌에서는 아발론 대신 디아나 호수가 언급되는데, 13세기 소설 『멀린 후트(Merlin Huth)』가 대표적인 예다. 한편 랜슬롯의 어머니 헬레나 여왕은 훗날 수도원에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

비비안느는 랜슬롯에게 학문과 기사의 예술을 가르치며 지혜와 용기를 심어주어 완성된 기사로 키워냈다. 이후 그를 아서왕의 궁정 카멜롯으로 데려가 서임식을 거치게 하고, 원탁의 기사들에게 소개했다. 랜슬롯은 이후 원탁의 기사 중 가장 명성 높은 인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마법사 멀린과의 사랑, 그리고 몰락

전설의 여러 변형 중 하나에 따르면, 멀린은 비비안느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그녀는 멀린에게 자신의 비밀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멀린은 자신이 아는 거의 모든 마법을 비비안느에게 전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비안느는 잠든 연인의 주위로 마법의 베일을 아홉 번 감아 그를 '영원한 연인'으로 만들었고, 결국 멀린을 유리 탑(전설에 따라서는 동굴)에 가두어 버렸다.

또 다른 변형에서는 비비안느가 멀린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전한다. 늙은 마술사의 집요한 구애로부터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 비비안느는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고, 오직 그녀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멀린은 예언의 재능 덕분에 그녀가 자신의 몰락을 초래할 것임을 알면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비비안느는 마법의 주문으로 멀린을 산 채로 무덤 속에 묻어 버렸다. (산문 『랜슬롯』, 13세기 소설 『멀린 후트』 등 참조)

모르간느와의 관계 — 양육자인가, 숙적?

어머니 이그레인(Ygraine)이 죽은 뒤 비비안느는 모르간느(Morgane)를 돌보며 그녀를 마법사로 만들었고, 마법사 멀린은 이복동생인 미래의 아서왕의 교육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다른 문헌에서는 모르간느가 아서의 이복자매가 아니라 친자매이며, 비비안느가 아니라 멀린에게 마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 경우 두 여인은 오히려 마법으로 맞서 싸우는 숙적이 된다. 비비안느는 아서왕과 그의 궁정, 그리고 그가 상징하는 궁정적·기사도적 이상을 지키는 파수꾼인 반면, 모르간느는 오라비 아서와 올케인 귀네비어 여왕의 몰락을 바라는 존재다. (산문 『랜슬롯』, 『멀린 후트』, 『아서왕의 죽음』 등 참조)

현대의 재해석 — 스티븐 로우헤드의 '샤리스'

스티븐 로우헤드(Stephen Lawhead)는 자신의 소설 시리즈 『펜드래건 사이클(Pendragon Cycle)』에서 호수의 여인을 '샤리스(Charis)'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해석했다. 그녀는 아발론의 대왕(흔히 아틀란티스로 알려진)의 딸로, 브르타뉴의 왕자 탈리에신(Taliesin)과 결혼하여 펜드래건 시대보다 훨씬 이전 브르타뉴에서 고통 속에 마법사 멀린을 낳았다고 한다. 탈리에신이 죽은 후 샤리스는 홀로 멀린을 돌보았고, 마침내 로그레스(Logres)의 호수로 들어가 안식하였으며, 이로 인해 '호수의 여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