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9. 발리 섬에서의 첫날 – 꽃으로 가득한 시장과 웃음 짓던 여성 상인들

19. 발리 섬에서의 첫날 – 꽃으로 가득한 시장과 웃음 짓던 여성 상인들

긴 여정 끝의 도착, 그리고 여유로운 오후

2017년 4월 14일, 우리는 오후 1시경 서비스 아파트에 도착했다. 숙소로 가는 길목에서 채소 시장을 발견했는데, 건강을 생각하는 우리 마음은 저절로 흐뭇해졌고 자연스럽게 '저녁에는 저기서 채소를 사자'는 약속이 정해졌다.

하지만 긴 비행의 피로가 온몸을 짓눌렀다. 결국 첫날은 차 한 잔의 차를 곁들이며 잔디밭에 앉아 논두렁 풍경을 바라보는, 그저 여유로운 하루로 보내기로 했다. 현지 드라이버 푸투(Putu)는 내일이 발리 섬에서 가장 큰 힌두교 축제라고 알려주며 다음 날은 조금 늦게 올 것이라고 했다. 우리 역시 일상의 리듬을 되찾고 오전 10시 반까지 식사 준비를 마쳐야 했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푸투는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스쿠터 한 대를 빌려주었다.

꽃으로 가득한 시장

저녁이 되자 나와 비제이(Vijay)는 푸투의 스쿠터를 타고 아침에 지나치며 봤던 그 채소 시장으로 향했다. 장소는 푸라 따만 아윤(Pura Taman Ayun) 사원 인근, 멩구이(Mengwi) 지역이었다. 그런데 도착하자 또 하나의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엔 채소가 없었다. 온통 화분과 꽃가게뿐이었다. 아침에 초록빛 채소로 착각했던 것들은 사실 모두 꽃이었던 것이다.

여러 종류, 여러 색깔의 꽃이 사방에 가득했다. 대나무 조각으로 손수 엮어낸 꽃 수십 송이도 자연 그대로의 꽃들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이 모든 꽃은 다음 날 열릴 대축제에 쓰이기 위해 힌두교 신자들이 팔러 온 것이었다. 시장은 붐볐지만 인도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꽃을 사러 왔다. 값은 흥정했지만 언쟁은 없었고, 큰 소리를 내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사이사이에 평온한 만족감이 배어 있었다.

과일·채소 시장의 여성 상인들

꽃 시장 옆 좁은 골목을 지나자 비로소 진짜 과일·채소 시장을 만났다. 인도처럼 작은 가게들이 즐비했고 나무 손수레도 곳곳에 보였다. 과일 종류는 다양해서 기뻤지만, 채소는 너무 적어 조금 실망스러웠다.

사과는 킬로그램에 4만~5만 루피아, 인도 화폐로 환산하면 200~250루피(약 3,400~4,300원)나 했다. 바나나는 한 개에 4천 루피아, 즉 인도 돈으로 20루피(약 350원)짜리 바나나였다. '천' 단위 숫자를 들을 때마다 등에 식은땀이 났다. 인도 화폐로 계산하고 나면 조금 마음이 놓였지만, 모든 과일과 채소가 인도에 비해 몇 배나 비쌌다.

몇몇 노점에는 감자, 양파, 박, 양배추, 가지, 늙은 호박 같은 채소가 놓여 있었다. 이름을 물어도 도무지 기억에 남지 않는 현지 채소들도 있었다. 어떻게 요리해 먹는 건지 알아내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상인들이 100% 여성이었고,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울과 지폐를 번갈아 보여 주며 몇 개에 얼마를 내야 하는지 필사적으로 설명하려 애썼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어느 가게 앞에 서면 근처 가게의 여인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떻게 채소를 고르고, 흥정하고, 말을 주고받는지 궁금해서 견학하듯 지켜보는 것이었다.

채소를 파는 그 여인들의 모습에서 형편이 매우 어려워 보였다. 인도의 채소 장수들보다도 더 가난해 보였다. 한마디 통하지 못했음에도,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은 우리가 함께해 주어 기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그대로 전해 왔다. 우리는 감자, 양파, 토마토를 겨우 구입하고, 신선한 채소는 다음 날 아침 다시 사러 오기로 약속했다.

외국인을 알아보는 개들

저녁 7시가 겨우 넘었을 뿐인데 벌써 캄캄해져서 우리는 귀로에 올랐다. 서비스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7시 반이었는데도 이미 깊은 밤 분위기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외국인이라는 걸 들키면 습격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멩구이 마을의 개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다시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 눈빛은 분명히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희가 외국인인 거 우리는 알아. 아파트에나 있지,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 인도에서도 길의 개들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똑같이 짖어대는 게 문득 생각났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단어로 불린다는 생각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