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웨인(Gawain)은 아서왕의 외조카이자 왕의 가장 친한 벗이며, 멀린의 도움을 받은 아서왕이 원탁에 처음 서임한 기사 중 한 명이다. 그의 이름에는 여러 켈트어 계열의 표기가 전해지는데, '그왈흐마이(Gwalchmai)'와 '그왈흐메이(Gwalchmei)'는 '5월의 매', 곧 '평원의 매'를 뜻한다. 이는 그가 지닌 태양적·송골매적 상징성을 암시하는 이름으로, 후술할 신화적 기원과 깊이 연결된다.
충성의 증명: 녹색 기사와의 대결
가웨인은 다양한 임무에서 아서왕을 도왔으며, 기묘한 존재인 녹색 기사(Green Knight)와 맞섬으로써 왕에 대한 충성을 증명했다. 녹색 기사는 스스로 목을 베어달라고 제안하는 이질적인 존재로, 유명한 중세 시가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에서 이 대결 장면이 극적으로 그려진다. 가웨인은 두려움 없이 도끼를 받아 들었고, 이 일을 통해 명예로운 기사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했다.
랜슬롯과의 비극적 복수극
그러나 그의 운명은 비극으로 기울어진다. 랜슬롯이 기네비어 여왕을 화형대에서 구출하는 과정에서 가웨인의 두 남동생 가레스(Gareth)와 가헤리스(Gaheris)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격분한 가웨인은 복수를 맹세하고 랜슬롯의 사촌 리오넬(Lionel)을 살해한다. 이후 단독 결투에서 랜슬롯과 맞서지만 그를 끝내 죽이지는 못하고, 오히려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는다.
상처로 인해 이성을 잃은 그는 랜슬롯의 또 다른 사촌 헥터 드 마리스(Hector de Maris)까지 살해하고, 마침내 아서왕에게 용서를 청한 뒤 그 상처로 숨을 거둔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죽은 직후 아서왕의 앞에 환영으로 나타나, 모드레드(Mordred)를 물리치려거든 반드시 랜슬롯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경고했다고 전해진다.
성배탐색 속의 가웨인
『성배탐색(Quest for the Grail)』에서 가웨인은 신앙과 초월 없이 오직 무력만을 추구하는 세속적 기사도의 가장 웅변적인 대표자로 그려진다. 그 정반대에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완전한 기사, 갈라하드(Galahad)가 자리한다. 이 대비는 세속적 영광과 영적 구원이라는 두 가치 체계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로망스 전통이 그린 가웨인
크레티앵 드 트루아(Chrétien de Troyes) 이래의 로망스 전통은 가웨인을 다소 피상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즉 용감하고 훌륭한 기사이되, 현세의 가치 체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초월적 경험이 있다. 여왕들의 성에 들어감으로써 그는 죽은 자의 세계로 넘어가는데, 그곳에서 죽은 어머니를 만나고, 그 세계에서 살아 돌아온 최초의 인물이 된다. 영웅으로 환영받은 그는 성에 도착했을 당시 유일한 남자였으며, 영토를 약탈당한 여왕들을 이 죽음의 장소에서 무사히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랑도 발견한다.
『성배의 이야기』(흔히 『페르시발』이라는 제목으로 잘못 알려진 작품)에서 이 완숙한 기사는 예의 없는 세계, 그 추함과 절망과 마주하면서도 자신의 명예와 품위를 지켜야 한다. 반면 이 세계 밖에서 자란 페르시발은 정반대의 과제, 곧 엄격한 기사도 규율을 몸에 익혀야만 한다.
왕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자 왕권적 정의의 수호자였던 가웨인은 로망스 전통에서 원초적 복수(faide)의 대변자가 되었고, 수많은 문헌이 그를 무대 앞으로 내세워 매력적인 구혼자, 영원한 신사, 곧 돈후안(Don Juan)의 중세적 변형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그는 '여인들의 기사'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한 가지 재미있는 설정이 있다. 점심시간에 가웨인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 시각이야말로 그의 힘이 절정에 달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왕에게 현명한 조언을 건네는 지혜로운 기사로 남는다.
신화적 기층: 태양의 영웅
가웨인은 전형적인 태양의 영웅(solar hero)이다. 그의 힘은 태양의 궤적에 따라 오르내리며, 따라서 정오에 가장 강력해진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이름을 공유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신 오엥구스(Oengus)와의 친연성으로 설명된다. 다만 중세 로망스들의 기독교화 과정이 인물의 원형을 덧씌웠기 때문에, 이 태양 신화적 기층을 더 깊이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