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몽 4세: '생질'로 불린 툴루즈 백작
1042년 툴루즈에서 태어나 1105년 트리폴리에서 생을 마감한 레몽 4세(Raymond IV de Saint-Gilles)는 루에르그와 툴루즈의 백작이었다. 그는 폰스(Pons, 재위 1037~1060)의 아들로, 처음에는 생질(Saint-Gilles) 백작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상속을 통해 이룩한 '대툴루즈 백국'
그는 사촌인 베르트(Berthe, 루에르그의 레몽 3세의 손녀)와, 친딸에게서 상속권을 빼앗아 그에게 넘겨준 형 기욤 4세(Guillaume IV)로부터 차례로 영지를 물려받았다. 이렇게 축적된 그의 영토는 광대한 루에르그·님·나르본 백국, 고시아(Gothia) 변경백령, 제보당·아그드·베지에·위제스의 영주령 또는 공국, 그리고 툴루즈 본토 백국에까지 이르렀다. 이로써 레몽 4세는 이른바 '대(大)툴루즈 백국'이라 불릴 만한 국가의 창건자가 되었다.
십자군에 응답하다
그의 삶은 화려한 무공으로 가득했다. 스페인에서 무어인을 상대로 원정을 벌인 뒤, 그는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내건 십자군 호소에 가장 먼저 응답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서방을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한다. 영지의 통치를 아들 베르트랑에게 맡기고, 루에르그의 일부를 리샤르 드 밀로-제보당(Richard de Milhau-Gévaudan)에게 위탁한 뒤(이것이 로데즈 백국의 기원이 되었다), 프로방스에서 항해에 나선 것이다. 거의 모든 직속 가신과 예속 가신이 그를 따랐고, 남부군은 달마티아와 마케도니아를 거쳐 콘스탄티노플에 도달했다.
동로마 황제와의 갈등, 그리고 전장에서의 무공
동행한 많은 십자군 지도자들과 달리, 레몽은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요구한 충성 서약을 거부했다. 그의 전투 열정은 니케아(1097년), 도릴라이움(같은 해), 안티오키아(1098년)에서 놀라운 성과를 낳았다. 한편 타란토의 보에몽과의 갈등은 오히려 그가 동로마 황제와 화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1098년과 1099년에는 트리폴리의 아미르를 상대로 공격을 거듭했다.
예루살렘 함락 이후
그러나 십자군들은 예루살렘 해방을 애타게 기다렸고, 레몽 역시 그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1099년 도시가 함락된 뒤 성묘 수호자 자리는 부용의 고드프루아에게 돌아갔고, 이에 분한 레몽은 아스칼론과 아르수프 공성전에서 손을 뗐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에서 소집된 구원군의 선봉에 섰으나, 이 군대는 1101년 앙키라 근교에서 참패를 당했다.
트리폴리 백국의 건설과 최후
그럼에도 레몽은 좌절하지 않았다. 이후 몇 년간 1102년 토르토사(Tortosa), 1104년 지벨레(Gibelet, 오늘날의 비블로스) 등 두 요충지를 점령했고, 트리폴리 백국을 세워 '트리폴리의 레몽 1세'로 불렸다. 다만 정작 트리폴리 성 자체는 끝내 손에 넣지 못한 채 1105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미완의 위업은 장남 베르트랑, 즉 트리폴리 백작 가문의 시조가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