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파리의 외드(Eudes de Paris): 노르만족을 막아낸 서프랑크의 왕

파리의 외드(Eudes de Paris): 노르만족을 막아낸 서프랑크의 왕

파리의 외드(Eudes de Paris, 860년경 출생 ~ 898년 라페르 사망)는 파리 백작을 거쳐 프랑스의 왕이 된 인물로, '강력한 로베르(Robert le Fort)'의 장남이었다. 그는 카롤링거 왕조의 직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공헌과 정치적 역량을 바탕으로 왕위에 오른, 서프랑크 왕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출생과 가문의 배경

외드의 아버지인 강력한 로베르는 앙주 일대를 다스리던 실력 있는 귀족으로, 노르만족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가 866년 브리사르트(Brissarthe) 전투에서 전사했다. 당시 외드는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영지를 즉시 물려받지 못했고, 886년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남긴 영토를 상속받을 수 있었다.

파리 백작과 노르만족 방어전

파리 백작이 된 외드는 센 강과 루아르 강 사이의 광대한 지역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황제 카롤루스 3세(뚱보왕)로부터 '프랑크인들의 공작(dux Francorum)'이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용감하고 활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외드는 885년부터 886년까지 이어진 노르만족의 파리 포위전에서 도시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명성을 크게 높였다. 이 승리는 그가 단순한 지방 귀족을 넘어 왕국 전체의 지도자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888년, 왕위 등극

파리 방어전의 성공 이후, 888년 콩피에뉴(Compiègne)에서 열린 대귀족 회의에서 외드는 루도비쿠스 2세(말더듬이왕)의 후계자로 선출되었다. 대귀족들은 어린 샤를 3세(단순왕, Charles le Simple) 대신 외드에게 왕관을 내밀었는데, 이는 그의 군사적 능력과 노르만족에 대한 방어 공적을 높이 산 결과였다.

샤를 3세와의 대립

왕이 된 이후에도 외드는 노르만족과의 전쟁을 계속 이어갔다. 그는 몽포콩앙아르곤(Montfaucon-en-Argonne)에서 노르만족을 격파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한편으로 여러 차례 패배를 겪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도 입지가 흔들렸다. 로타링기아의 아르눌프(Arnoul)와 랭스 대주교 풀크(Foulques)는 외드에 맞서 어린 샤를 3세를 지원했고, 결국 893년 풀크 주교는 샤를 3세를 왕으로 즉위시켰다. 이로써 서프랑크 왕국에는 두 명의 왕이 병존하는 분열 국면이 벌어졌다.

수년간의 갈등 끝에 외드는 경쟁자와 타협하여 영토를 나누기로 합의했고, 897년에는 라인 강과 센 강 사이의 영토를 샤를 3세 측에 넘겨주었다. 외드는 898년 라페르(La Fère)에서 생을 마쳤으며, 그의 뒤를 이어 샤를 3세가 단독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역사적 의의

외드는 카롤링거 왕조가 쇠퇴하던 시기에 군사적 공헌만으로 왕위에 오른 최초의 비(非)카롤링거 군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의 즉위는 이후 카페 왕조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서프랑크·프랑스 왕권 변화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의 가문은 훗날 프랑스 왕위를 차지하는 카페 왕조의 기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