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근위대(프랑스어: Garde écossaise)는 1422년 샤를 7세가 프랑스 국왕의 개인 호위를 담당하기 위해 창설한 정예 군사 부대입니다. 이후 이 부대는 점차 왕의 군사 가신단(maison militaire du roi) 소속 부대에 통합되었습니다.
기원과 창설
스코틀랜드 근위대의 기원은 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스코틀랜드 귀족들로 구성된 한 무리가 프랑스로 건너와 샤를 3세의 호위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근위대가 공식적인 부대로 창설된 것은 샤를 7세 재위 시기였습니다. 문서 기록으로는 1425년에 그 존재가 확인되지만, 실제 창설 시기는 1410년대 말로 추정됩니다. 이는 1497년에 창설된 백인 스위스 용병대(Cent-Suisses)보다 훨씬 앞선 일입니다.
역할과 발전
근위대는 약 100명 규모로 왕의 최층근위를 담당했으며, 그 대가로 후한 급여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전투 부대로도 활용되었는데, 1465년 몽레리 전투에서 루이 11세와 함께 싸우다 많은 대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루이 11세는 이 부대를 바탕으로 두 개의 궁수 중대를 추가로 창설했으나, 이들은 프랑스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515년에는 프랑수아 1세가 네 번째 중대를 추가했으며, 이들 부대는 총칭하여 '왕의 호위대'로 불렸습니다. 이 무렵부터 인원은 더 이상 스코틀랜드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부대는 여전히 '스코틀랜드 중대'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스코틀랜드와의 유대
이러한 기원을 기리기 위해 스코틀랜드 중대는 종종 스코틀랜드 왕실 가문의 요청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특히 17세기에는 잉글랜드의 찰스 1세와 제임스 2세와 관련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흔적은 경비병(guet)의 응답 용어 '하미르(hamir)'입니다. 이는 중세 스코틀랜드어 "hhay ham ier"(나는 여기 있다)에서 유래한 말로, 부대의 스코틀랜드 출신 기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특별 칭호
'스코틀랜드 근위병'이라는 특정 칭호는 왕의 호위 중대 가운데 스코틀랜드 중대 소속 병사 6명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들은 즉위식이나 왕실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의전에서 왕의 최층 호위를 맡는 영예로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들의 지휘관은 '프랑스 제1무장자(premier homme d'armes de France)'라는 칭호를 가졌습니다.
부활과 소멸
다른 호위 중대들과 마찬가지로 제1중대는 1814년 부르봉 왕정복고기에 재건되었으나, 1830년 부르봉 왕조의 몰락과 함께 최종적으로 해체되며 그 긴 역사에 막을 내렸습니다.
일화: 왕을 죽인 근위병
스코틀랜드 근위대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일화는 비극적인 토너먼트 사건입니다. 근위대 소속이었던 가브리엘 드 몽고메리(Gabriel I de Montgomery)가 1559년 토너먼트 경기 중 우연히 앙리 2세 국왕을 치명상 입혔습니다. 몽고메리의 창이 부서지면서 생긴 파편이 국왕의 투구 틈새로 들어가 눈에 박혔고, 앙리 2세는 며칠 뒤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프랑스 왕실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으며, 근위대의 이름과 함께 오래도록 회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