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십자군 전쟁의 숨은 공신, 필리프 2세 오투스트와 리처드 1세의 대결

십자군 전쟁의 숨은 공신, 필리프 2세 오투스트와 리처드 1세의 대결

성지에서 벌어진 두 왕의 대조적 평가

십자군 전쟁 당시 성지(聖地)에서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 오투스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쟁과 방대한 기록이 쏟아져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국왕 리처드 1세(사자심왕)의 기사도적인 행동과 프랑스왕의 음모와 꾸법을 대비시키며, 지금까지도 후자를 비난하는 시각을 고수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통념에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간과되고 있습니다. 바로 생장다크르(아크레)가 함락된 것은 필리프 2세가 직접 하달한 공사들의 덕분이라는 점입니다. 필리프는 리처드보다 앞선 1191년 4월에 먼저 성지에 도착해 공성전의 실질적인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6월에 상륙한 리처드, 동료들만 짜증 나게 한 협상

같은 해 6월에야 상륙한 리처드는 정작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비밀리에 협상을 벌여 동료들을 화나게 했고, 끊임없이 투덜거렸으며, 극심한 감정 기복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그와 함께 일관된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병'을 둘러싼 귀국 논란의 진실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리프는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는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과했지만, 리처드는 이를 단지 구차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필리프는 실제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병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의 귀국 여정은 무려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급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사람의 발걸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느린 속도였습니다. 이는 '병을 핑계로 재빨리 빠져나간 프랑스왕'이라는 흔한 평가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