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마서필드 전투: 노섬브리아의 오스왈드 대 머시아의 펜다

마서필드 전투(Maserfield, 웨일스어로는 '마에스 코그위 Maes Cogwy')는 642년 8월 5일, 앵글로색슨 왕국인 노섬브리아의 왕 오스왈드와 머시아의 왕 펜다가 맞붙은 결정적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오스왈드는 전사했고, 그의 왕국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웨일스 연대기에는 전투 연도가 644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오늘날에는 642년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전쟁의 배경

오스왈드의 숙부이자 노섬브리아의 왕이었던 에드윈이 633년 햇필드 체이스 전투에서 사망한 이후, 펜다가 이끄는 머시아 세력은 남부 영토에서 노섬브리아 패권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왔습니다.

오스왈드는 634년 헤븐필드 전투에서 캐드월론 아프 캐드판(햇필드 체이스 전투 당시 펜다의 동맹)이 이끄는 웨일스군을 격파하며 노섬브리아의 브리튼 섬에 대한 패권을 회복했습니다.

펜다는 표면적으로는 오스왈드의 권위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노섬브리아에 대한 적대감을 유지했거나 최소한 오스왈드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투의 경과

알 수 없는 발단

마서필드 전투가 발발한 정확한 원인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 세기 후의 역사가 베다는 오스왈드를 성스러운 인물로 묘사했는데, 그가 사실을 미화하여 서술하려 했던 탓에 오스왈드의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면모를 누락했을 수 있습니다. 베다는 다만 오스왈드가 자신의 왕국을 지키다 전사했다는 사실만을 전합니다.

전통적으로 이 전투의 장소는 오스웨스트리(Oswestry)로 비정됩니다. 만약 이 위치가 맞다면, 오스왈드가 적진 깊숙이 진입해 있었다는 뜻이므로 그가 공세적인 입장에서 전쟁을 벌였을 개연성이 큽니다.

노섬브리아의 패배

전투의 결과는 노섬브리아의 참패였습니다. 베다는 오스왈드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꼈을 때 병사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오스왈드의 시신은 토막 났으며, 머리와 팔은 창 끝에 꽂혀 전시되었습니다. 그의 유해는 이듬해 동생이자 후계자인 오스위우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이교도였던 펜다와 달리 기독교 신자였던 오스왈드는 순교자이자 성인으로 추앙받게 되었고, 베다는 오스왈드의 유골과 그가 전사한 장소에서 일어났다고 전해지는 여러 기적들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머시아 내부의 변수: 에오와의 죽음

흥미롭게도 펜다의 형제이자 머시아의 또 다른 왕인 에오와(Eowa) 역시 이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오와가 오스왈드와 동맹 관계였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에오와가 머시아 북부를 통치하는 우위의 왕이었고, 펜다는 남부를 다스렸다고 추정합니다.

《브리튼인의 역사(Historia Brittonum)》에는 펜다의 재위가 10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베다는 633년부터 655년까지 22년으로 서술), 이는 그의 재위가 마서필드 전투의 승리를 기점으로 계산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에오와의 죽음이 펜다에게 중요한 경쟁자를 제거해 주었고, 그 결과 펜다가 머시아 전역에 대한 지배력을 확립할 수 있었다는 해석과 부합합니다.

펜다, 잉글랜드 최강의 왕이 되다

역사가 프랭크 스텐턴(Frank Stenton)에 따르면, 마서필드 전투의 승리는 펜다에게 "잉글랜드 최고의 왕"이라는 지위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는 655년 윈워드 전투에서 사망할 때까지 이 지위를 유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