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코 가스파르 두트라(Eurico Gaspar Dutra) 정부는 1946년부터 1951년까지 이어졌으며, 제4차 브라질 공화국 시대의 막을 열었다. 이 시기는 노동 운동과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박해로 특징지어진다.
두트라 정부와 제4공화국의 시작
두트라 정부는 1946년부터 1951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제4차 브라질 공화국'으로 불리는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 시기는 게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가 실각한 1945년에 시작되어 1964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때까지 이어졌다.
두트라 정부 시절 가장 큰 특징은 냉전 상황에서 미국과의 동맹 강화였으며, 그 결과 브라질 내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1945년 선거와 정당의 부활
1945년 초, 자신에게 가해지던 반대 세력을 무마하기 위해 게툴리우 바르가스는 '추가 헌장(Ato Adicional)'을 반포했다. 이 법령은 같은 해 말 대통령 선거 실시를 확정하고, 브라질에서 정당 조직의 재건 조건을 마련했다. 참고로 1930년 이후 대통령 직접 선거는 한 번도 치러지지 않았고, 정당들은 1937년 에스타도 노보(Estado Novo) 선포와 함께 해산된 상태였다.
추가 헌장을 계기로 제4공화국 시기 브라질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될 정당들이 하나둘 조직되기 시작했다.
국민민주연합(UDN)
이 시나리오에서 처음으로 조직된 주요 정당은 야당 성격의 국민민주연합(União Democrática Nacional, UDN)이었다. 창당 초기 UDN은 성향이 매우 다양한 인사들을 포용하고 있었고, 소위 사회주의자로 불릴 만한 인물들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당이 조직을 갖추고 이념적 색채가 뚜렷해지면서 좌파 정치인들은 차츰 UDN을 떠났다. 그 결과 UDN은 게툴리슴(getulismo, 바르가스의 정치 유산)에 맞서는 강경한 자유주의 야당으로 자리 잡았다. 제4공화국 시기 UDN의 대표적인 인물은 카를루스 라세르다(Carlos Lacerda)였다.
역사학자 릴리아 슈바르츠(Lilia Schwarcz)와 헬로이자 스타링(Heloisa Starling)은 UDN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UDN은] 보수적이고 도덕주의적이며 반민주적인 정당으로, 쿠데타 기질을 숨기지 않았다. UDN은 민주주의를 옹호한다는 명분 아래 수상하게도 쿠데타를 은근히 준비하는 버릇이 있었고, 당원들은 공공 영역을 극도로 도덕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며 권력자의 개인적 행동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1|
사회민주당(PSD)
이 시기의 또 다른 양대 정당은 게툴리우 바르가스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먼저 사회민주당(Partido Social Democrático, PSD)은 에스타도 노보 시기 바르가스가 임명한 연방 개입관들이 창당한 정당이다. PSD는 당시 브라질 최대급 정당 중 하나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에는 누구 못지않게 능했다.
브라질 노동당(PTB)
바르가스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던 또 하나의 핵심 정당은 브라질 노동당(Partido Trabalhista Brasileiro, PTB)이다. 이 당은 바르가스 본인이 창당했으며, 노동 계층을 자신의 정치 프로젝트인 '트라발리슴(trabalhismo)' 주변으로 결집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슈바르츠와 스타링은 트라발리슴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트라발리슴이라 불린 이 프로젝트는 브라질 노동 대중의 문제를 사회 문제의 핵심으로 파악했으며, 그 해결에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1930년대에 도입된 사회 입법을 노동자들에게 법적 보호를 제공하는 광범위한 개혁 프로그램의 기반으로 삼았다.|2|
제4공화국 전 기간에 걸쳐 PTB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고, 점점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이 당의 정치 프로젝트는 점차 민주 사회주의 노선에 가까워져 갔다.
진보사회당(PSP)
규모는 작지만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 정당으로는 아데마르 드 바루스(Ademar de Barros)를 중심으로 한 진보사회당(Partido Social Progressista)이 있었다.
1945년 대통령 선거
당시 주요 정치 세력을 고려할 때, 1945년 선거는 다음 후보들의 대결 구도로 전개되었다.
에두아르두 고메스 준장(브리가디에르) – UDN
유리코 가스파르 두트라 장군 – PSD-PTB 연합
예두 피우자 – 브라질 공산당(PCB)
선거 운동 내내 에두아르두 고메스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고, UDN계 후보의 승리가 유력한 시나리오로 여겨졌다. 그러나 선거 약 한 달 전, UDN에 불행한 사건이 터졌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강연에서 에두아르두 고메스는 게툴리슴 지지자들의 표를 무시하며 그들을 "실업자 패거리"라고 폄하한 것이다.
이 발언은 경쟁 진영에 의해 왜곡되어 '마르미테이루(marmiteiro)'라는 용어와 결부되었다. 당시 마르미테이루란 도시 빈곤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는데, UDN의 정적들은 이 발언을 이용해 고메스가 마르미테이루들의 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결국 이 발언은 노동자들을 에두아르두 고메스 후보에게 반대하고 두트라의 승리를 지지하도록 결집시켰다. 두트라의 승리를 확정 지은 또 하나의 상징적 사건은 게툴리우 바르가스가 두트라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식화한 것이었다. 그 결과 선거에서 두트라는 55.39%의 득표율로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두트라 정부의 집권
1946년 헌법 제정
두트라 정부 초기의 중요한 과제는 브라질 새 헌법의 제정이었다. 새 헌법은 1946년 9월 18일에 공포되었으며, 오랫동안 정지되어 있었던 일련의 민주적·정치적 권리를 국민들에게 회복시켰다.
그러나 일부 진전에도 불구하고 1946년 헌법은 역사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문맹자에게 선거권을 계속 부여하지 않았고, 농촌 노동자를 노동권 보호에서 배제하는 관행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1946년 헌법은 노동자의 파업권을 상당히 제한했다.
냉전과 공산주의 탄압
두트라 정부 시기를 논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1946년부터 1947년 사이 이미 세계의 양극화 구도가 분명해졌고, 미국의 높은 관심 속에 브라질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브라질 내 공산주의 세력의 성장에 대한 우려도 컸다. 브라질 공산당(PCB)은 예두 피우자 후보를 통해 약 9%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노동 단체 안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도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이에 두트라 정부는 미국의 이익에 맞춰 반공 정책을 채택했다.
그 결과 브라질은 소련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고, 1947년 연방대법원(STF)이 당 활동 금지를 결정하면서 PCB는 해산되었다. 이후 1948년 1월에는 PCB 소속으로 선출된 정치인들의 피선거권이 박탈되었다.
이러한 공산주의자 탄압은 노동조합에 대한 국가 개입주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었다. 임기 동안 두트라 정부는 수십 개 노동조합에 직접 개입했으며, 파업 조건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방식으로 노동자의 파업권을 크게 위축시켰다.
경제 정책과 SALTE 플랜
경제 분야에서 두트라 정부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목표로 소비재 수입 장려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그 결과 외환 보유고가 고갈되면서 정부는 1948년 수입 장려 정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두트라 정부는 브라질 산업화에 필요한 적절한 투자를 하지 않았고, 생활비 상승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두트라 정부는 'SALTE 플랜(Plano Salte)'을 제안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국가가 보건(Saúde), 식량(Alimentação), 교통(Transporte), 에너지(Energia) 등 국가 발전에 필수적인 분야에 공공 투자를 집행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트라 정부는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연평균 8%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했다.|3|
참고 문헌
SCHWARCZ, Lilia Moritz; STARLING, Heloisa Murgel. 『브라질: 전기』. 상파울루: Companhia das Letras, 2015, p. 392.
같은 책, p. 394.
FAUSTO, Boris. 『브라질사』. 상파울루: Edusp, 2013, p.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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