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순교왕 성 에드먼드: 이스트 앵글리아의 마지막 왕

순교왕 성 에드먼드: 이스트 앵글리아의 마지막 왕

순교자 에드먼드(869년 11월 20일 사망)는 바이킹이 이스트 앵글리아 왕국을 정복하기 전 이 나라의 마지막 국왕이었다. 사후 성인으로 공경받았으며, 그의 축일은 11월 20일이다.

생애와 통치

기록된 문헌이 부족하여 이스트 앵글리아 왕국 후기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에드먼드의 통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웨식스에서 9세기 말에 편찬된 《앵글로색슨 연대기》는 이스트 앵글리아의 사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870년 테트퍼드에서 대이교단(Great Heathen Army)의 데인족과 싸우던 중 전사했다는 사실만을 간략히 전할 뿐이다. 후대 문헌들은 그의 즉위 연도를 855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의 주화는 (마찬가지로 실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애설스탄과 애설워드 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음을 시사한다. 주화는 두 시기로 분류할 수 있는데, 초기 주화에는 일반적으로 '+ eadmvnd rex an'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고, 후기 주화에는 단순히 '+ eadmvnd rex'라고만 새겨져 있다.

성인 숭배

사후 에드먼드는 이스트 앵글리아의 데인족들 사이에서 특히 강렬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 숭배는 베오드릭스워스 수도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그의 유해는 900년에서 920년경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수도원과 도시는 그를 기리는 뜻에서 '버리 세인트 에드먼즈(Bury St Edmunds)'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는 'sce eadmvnd rex'(오, 성왕 에드먼드여!)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 주화가 주조되었다. 이 주화는 데인로(Danelaw) 지역에서 널리 유통되었으며, 여러 매장 보물고에서도 발견되었다.

에드먼드의 순교

에드먼드의 생애는 전설의 소재가 되었다. 수도사 아보 드 플뢰리(Abbo de Fleury)는 985년부터 987년까지 램지 수도원에 머무는 동안 이러한 민간·수도원 전통에 의거해 국왕의 성인전을 저술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캔터베리 대주교 던스턴에게서 얻었으며, 던스턴은 다시 에드먼드 왕의 무장 호위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성 에드먼드 수난기(Passio S. Eadmundi)》에서 에드먼드는 '이상적인 기독교 군주'로 그려진다. 그는 바이킹과의 전투에 나서기를 거부했고, 결국 바이킹에게 순교를 당하게 된다. 왕은 학대당한 끝에 나무에 묶여 화살을 맞았지만, 그래도 신앙을 부인하지 않았고 마침내 참수형에 처해졌다. 아보는 살해자의 이름을 힝구아르(Hinguar)라고 밝혔는데, 이는 '뼈 없는 이바르(Ivar the Boneless)'라는 이름이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기록은 문법가 앨프릭(Ælfric)이 고대 영어로 집필한 《성인전》에도 수용되었다.

에드먼드는 잉글랜드 왕국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졌으나, 11세기에는 참회왕 에드워드에게, 14세기부터는 성 게오르기우스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버리 세인트 에드먼즈에 안치되어 있던 그의 성유물함은 16세기 수도원 해체 운동 당시 파괴되었다.

에드먼드는 오늘날에도 가톨릭 교회에서 11월 20일에 기념된다. 그는 흔히 손에 화살을 든 모습(예: 윌턴 제단화)으로, 또는 나무에 묶여 화살에 몸이 가득 찬 모습으로 묘사된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묘사와 구별되는 점은 왕관을 쓰고 있다는 것과 곁에 늑대가 함께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두아 수도원, 가톨릭 이스트 앵글리아 교구, 그리고 서퍽주의 수호성인이다. 런던의 성 에드먼드 왕 겸 순교자 교회(St Edmund, King and Martyr)를 비롯한 여러 교회가 그에게 헌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