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적 배경
가톨릭이 세계 유일하고 참된 종교로 인정받던 시대, 교회는 신약성경의 특정 해석에 근거해 법률을 제정할 권리를 독점했습니다. 유대인, 이단자, 종교개혁파, 그리고 '마녀'로 지목된 이들은 사제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가운데 광장에서 산 채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열광적인 신앙심에 사로잡혀 악(Evil)을 절대적이고 완전하게 뿌리뽑으려 했습니다.
귀족 가문은 구마(엑소시즘)를 통해 살아남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반 백성들은 대부분 화형이라는 처형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형벌은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주술이나 마법으로 타인에게 해를 입혔다면, 그는 사형에 처해지며 심지어 화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악마 추적은 결국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는 병리로 변질되었고, 악마와 계약했다고 의심되는 자라면 누구든 고발당했습니다. 마술사와 마녀들은 곳곳에서 색출되어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겁쟁이들과 믿지 않는 자들, 저주받을 자들,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 술사들, 우상 숭배자들, 그리고 거짓말하는 모든 자는 유황불이 붙은 못에 던져질 것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종교재판: 마녀사냥과의 싸움인가?
로마 교회가 사회 전체를 통치하던 시절, 백성들은 뜻도 알 수 없는 라틴어 미사에 참석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등장했고, 한 극단은 필연적으로 다른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선에서 멀어진 자는 악에 자신을 바친다는 논리였습니다. 억압은 반대 세력을 낳았고, 카타르파처럼 보복이 두려워 지하로 숨어 활동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교회는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흔히 '이단자'라 부르는 자들을 소추할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종교재판은 마술에 대한 공포와 함께 탄생했습니다. 일종의 미신적 체계가 구축되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처형 대상이 되었으며, 적어도 그들에게 씌워진 마술 혐의 자체는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종교재판소는 주로 마술사, 금서·부적·주문서·수상한 물건의 소지자, 그리고 드문 행동이나 태도를 보이는 자들을 추적했습니다. 아동들 역시 악마와 계약했다는 혐의로 비난받았는데, 마술은 유전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절차상 사춘기에 이르지 않은 아이를 죽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불신과 고발
믿음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 의심은 특정 인물에 대한 잘못된 확신으로 이어졌고, 마술 혐의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었습니다. 마을의 치유사들이 주요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갖가지 악행, 사악한 술법, 병자를 고치기 위해 주문을 사용했다는 온갖 비행이 뒤집어씌워졌습니다.
위험한 발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 여자들이 병을 고칠 수 있다면, 상처를 내고 죽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어떤 사실이나 외모도 용의자를 화형대로 끌고 갈 수 있었습니다. 직업도 유죄의 근거가 되었고, 외지인 신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상에서 가장 평범한 행동조차 가장 중대한 고발로 이어질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수세기 동안 만연한 이 불신은 마술 혐의 고발의 연속을 낳았습니다.
악마의 표식
'악마의 표식'은 악마의 손이 남긴 흔적으로, 악마와의 계약을 상징하며 그의 존재를 폭로하는 증표로 여겨졌습니다. 발톱으로 피가 날 때까지 새겨진 이 표식은 거미나 두꺼비 같은 동물의 형상을 띠기도 했습니다.
이 표식은 사악한 행위의 유일한 증거가 될 수 있었기에, 심문관들은 조사 과정에서 이를 찾느라 세세히 살폈습니다. 표식은 악마화된 몸의 죽은 부위였습니다. 더 이상 영혼의 인도를 받지 않아 통각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마녀는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새 주인은 사탄이었고, 사탄은 그녀가 부르는 즉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파멸된 존재였습니다.
고문을 감춘 재판
종교재판은 곧 고문의 예술이었습니다. 고발당하고 체포된 용의자는 심문에 회부되었고, 재판관들은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 각종 고문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여성은 지능이 부족해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다고 여겨져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지만, 이는 판결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판결이 내려오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감자도 있었습니다.
대체로 체포와 수감 후 고문을 통해 피해자의 자백을 뽑아냈고, 이는 곧 사형 선고와 처형으로 이어졌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는 심문을 깊이 파고들며 마술이란 실제로 무엇인지 이해하고 서술하려 했습니다. 피고인의 답변을 바탕으로 주로 사탄이나 악에 관한 신학적 문제를 정의하려 한 것입니다.
서유럽 대부분의 법원과 재판소가 적용한 심문 절차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방대한 법전에서 물려받은 로마법 원칙에 기반했습니다. 이 원칙에 따르면 먼저 피고인과 증인의 진술을 요구하고, 조사관들은 제출된 자료의 타당성을 검증하여 최종적으로 증거, 즉 대체로 피고인의 자백을 확보합니다. 재판 자체는 심문과 마녀 혐의자들의 신체 감정, 그리고 그들이 기르던 동물에 대한 감정까지 마친 뒤 진행되었습니다. 유죄의 확실한 증거가 확보되면, 용의자는 석방이냐 유죄 판결이냐를 좌우하는 판사 앞에 섰습니다.
화형형과 기타 처벌
판결은 재판이 끝날 무렵 내려졌습니다. 마법이나 마술을 사용한 자는 교수형 또는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종교재판의 마지막 마녀 희생자들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화형에 이르기 전 목매달려 죽음을 맞았습니다. 대부분의 마녀가 공개적으로 처형되었지만, 마술 행위에 대한 다른 처벌도 존재했습니다. 파문, 감금, 채찍질, 재산 몰수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 주술이나 마법으로 타인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는 사형에 처해지며 심지어 화형까지 선고된다." 이것이 마술에 대한 가장 극단적이면서 가장 흔한 선고였습니다. 가장 잔인한 형벌은 악을 숭배하는 자들을 위해 남겨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