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사르다르 파텔이 산산조각 낸 보팔 나와브의 '독립 몽상'

사르다르 파텔이 산산조각 낸 보팔 나와브의  독립 몽상

보팔 번왕국의 탄생과 마지막 나와브

보팔 번왕국은 1723년, 무굴 황제 아우랑제브의 군대에서 복무하던 아프가니스탄 출신 장교 도스트 무하마드 칸이 세운 나라입니다. 인도가 독립을 맞던 시점의 보팔 나와브(번왕)는 하미둘라 칸이었습니다. 그는 1926년 보팔의 군주가 되었고, 1931년과 1944년 두 차례에 걸쳐 번왕국 연합체인 나렌드라 만달(인도 번왕 회의)의 의장으로 선출될 만큼 인도 번왕들 사이에서 상당한 지위와 영향력을 누리던 인물이었습니다.

진나와 손잡고 펼친 독립 몽상

그러나 하미둘라 칸은 어떤 경우에도 인도에 합류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파키스탄의 창시자 무함마드 알리 진나와 함께 전국의 여러 번왕국을 부추겨 파키스탄에 합류하거나 아예 독립을 선언하도록 선동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대부분의 번왕들이 나렌드라 만달 참여를 거부하면서 보팔 나와브는 의장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나렌드라 만달은 결국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진나는 하미둘라 칸에게 직접 파키스탄으로 넘어와 총서기 자리를 맡아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딸의 거절, 그리고 보팔 독립 선언

1947년 8월 13일, 하미둘라 칸은 자신이 파키스탄으로 떠날 수 있도록 딸 아비다에게 보팔의 통치자 자리를 물려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비다는 아버지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결국 1948년 3월, 하미둘라 칸은 보팔의 독립을 공식 선언했고, 같은 해 5월에는 차투르 나라얀 말비야를 총리로 하는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한편 사르다르 파텔과 V. P. 메논은 하미둘라 칸에게 인도 합병 선언을 요구하는 압박을 계속해서 가하고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총리 차투르 나라얀 말비야 역시 번왕국의 인도 편입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며, 보팔 주민들 또한 프라자 만달 운동을 전개하며 인도 합병을 강력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즈 순례로 시간을 벌다

1948년 10월, 나와브는 메카 순례(하즈)를 떠났습니다. 이는 인도 합병 문제를 며칠이라도 미루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시간 벌기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보팔에서는 합병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폭발했습니다. 타쿠르 랄 싱, 샹카르 다야르 샤르마, 바이론 프라사드, 우다브 다스 등 운동 지도자들은 보팔 정부에 의해 체포되는 박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내각 해산과 21일간의 단식 투쟁

1949년 1월 23일, V. P. 메논이 보팔을 방문해 번왕국 관료들에게 "보팔은 독립 국가로 존재할 수 없다"고 명확히 경고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나와브는 1월 29일 내각을 해산하고 모든 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이에 맞서 전직 총리 차투르 나라얀 말비야는 21일간의 단식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파텔의 지시를 받은 메논은 이 기간 보팔의 랄 코티에 머물며 번왕국의 정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서명된 합병 문서

결국 1949년 4월 30일, 하미둘라 칸은 보팔 번왕국의 인도 합병 문서에 서명하고 말았습니다. 사르다르 파텔은 나와브에게 냉정하게 비판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파텔은 "나라가 당신의 논쟁적 재능과 능력을 필요로 하던 바로 그 시기에, 당신이 그것을 나라를 위해 쓰게 하지 않은 것은 나에게 큰 실망이자 슬픔"이라며 그의 선택을 질타했습니다.

이로써 1949년 6월 1일, 보팔 번왕국은 공식적으로 인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중앙 정부가 임명한 최고 집행관 N. B. 배너지가 행정 업무를 인수했으며, 인도 정부는 나와브에게 매년 110만 루피의 사유 재정(프라이비 퍼스)을 지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