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941년 옐니야 전투… 나치 독일 침략자를 상대로 한 소련의 첫 번째 승리

1941년 옐니야 전투… 나치 독일 침략자를 상대로 한 소련의 첫 번째 승리

옐니야(Yelnya)는 스몰렌스크에서 남동쪽으로 약 82km 떨어진 작은 도시다. 도시 인근의 고지대는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받았고, 바로 이 때문에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1941년 7월 19일, 하인츠 구데리안 상급대장이 지휘하는 독일 제2기갑집단이 마침내 이 고지대와 함께 도시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빠른 진격에는 대가가 따랐다. 구데리안 부대는 연료와 탄약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독일군이 형성한 이 돌출부(엔클레이브)는 양 측면이 모두 취약하게 노출된 형세였다.

주코프의 예비전선군, 반격을 준비하다

소련 지도부는 바로 이 약점을 공략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게오르기 주코프 대장의 지휘 아래 새로운 '예비전선군'이 창설되었고, 이 부대는 총 6개 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중 라쿠틴 중장의 제24군(소총사단 8개, 민병대 사단 1개, 전차사단 2개)과 쿠로치킨 중장의 제43군이 옐니야 돌출부의 독일군을 섬멸하는 임무를 맡았다.

독일군 측에서는 약 7만 명의 병력이 돌출부에 배치되어 있었다. 북쪽 끝은 제15보병사단이, 남쪽 끝은 제7보병사단이 각각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실패로 끝난 첫 공격

소련군은 8월 첫째 주 말에 공격을 개시했지만 참담한 실패를 거듭하며 막대한 손실만 입었다. 결국 공격은 8월 20일 중단되었고, 더 철저한 준비를 위한 재편성에 들어갔다.

8월 30일, 다시 시작된 공세

8월 30일, 공세는 티모셴코 원수의 서부전선군과 예료멘코 대장의 브랸스크전선군과의 협공 아래 다시 개시되었다. 소련군은 돌출부 양 끝에 전차사단 1개, 차량화사단 2개, 그리고 보병사단 6개를 투입했다. 목표는 독일 방어선을 돌파한 뒤, 돌출부 내부에 갇힌 독일군을 포위하여 섬멸하는 것이었다.

소련군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독일군 진지를 돌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포위까지는 이루지 못했다. 중앙집단군 사령관 폰 보크 원수가 히틀러로부터 후퇴 허가를 받아낸 것이다. 독일군은 대체로 질서 있게 물러나면서 추격해 오는 소련군에게 큰 피해를 안겼다.

9월 6일 도시 탈환, 그러나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다

9월 6일, 소련군은 옐니야를 탈환했고 9월 8일까지 공세를 이어갔으나 뚜렷한 진전을 만들지는 못했다. 소련 당국은 돌출부의 독일군을 섬멸했다고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은 독일군에게 23,000명의 손실을 강요했으며, 자신들의 손실은 32,000명이었다.

어떻든 옐니야 공세는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의 참혹한 패배들 이후 소련군이 거둔 첫 번째 성공적인 공세였다. 동시에 이 전투는 양 진영 간의 선전 전쟁으로도 발전했다. 독일은 "이것은 계획된 후퇴였다"며 자국 여론을 기만했다.

“공식적으로는 계획된 후퇴라고 했다. 역겨운 일이었다... 다음 날 라디오에서는 옐니야에서 전선을 성공적으로 교정했고 적에게 끔찍한 손실을 안겼다는 방송을 들었다. 후퇴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또다시 ‘승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여우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도망치고 있었다...” — 어느 독일군 병사

반면 소련의 선전은 이 공격을 위대한 승리로 포장했다. 소련은 처음으로 영국 기자에게 전장 접근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 전투의 또 다른 의미 있는 결과는, 여러 사단이 처음으로 '근위사단'이라는 영예로운 명칭을 받은 것이었다. 특히 이 전투에서 활약한 제100, 제127, 제153, 제161소총사단이 각각 제1부터 제4까지의 근위소총사단으로 개칭되며 소련군 근위부대 전통의 시초가 되었다.

1941년 옐니야 전투… 나치 독일 침략자를 상대로 한 소련의 첫 번째 승리

남부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독일군 병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