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페루 보병의 비극, 태평양 전쟁…군인 1.4명당 장교 1명의 기형적 군대

페루 보병의 비극, 태평양 전쟁…군인 1.4명당 장교 1명의 기형적 군대

페루는 남미에서 스페인 식민 제국이 해체되며 독립한 국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나라 중 하나였다. 이론상으로라면 남미 최강의 육군을 보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정치적 권력 다툼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정작 전쟁이라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페루 군대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타카마 사막을 둘러싼 전쟁의 시작

1879년부터 1883년까지 벌어진 태평양 전쟁(War of the Pacific)은 페루와 볼리비아가 동맹을 맺고 칠레에 맞선 전쟁으로,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에서 촉발되었다. 오늘날 세 국가 국경에 걸쳐 있는 아타카마 사막과 안데스 일대의 풍부한 광물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었다. 칠레군이 당시 볼리비아 영토였던 땅을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볼리비아가 칠레에 선전포고를 하자 칠레는 볼리비아의 동맹국인 페루에 선전포고로 화답했다.

군인 1.4명당 장교 1명, 기형적인 군 편제

페루는 이런 대결을 각오하고 있지 않았다. 수년간 내전 형태의 정치적 분쟁으로 찢겨 있던 페루가 보유한 정규군은 불과 6,140명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는 장성급 장교 25명과 기타 장교 2,654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군인 약 1.4명당 장교 1명꼴인 셈이다!

보병은 단 8개 대대뿐이었고, 기병 연대 3개와 포병 연대 2개가 있었으나 모두 정원이 크게 부족했다. 보병 대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 에콰도르령인 피친차(Pichincha) 출신 제1대대, 세피타(Zepita) 출신 제2대대, 아야쿠초(Ayacucho) 지역 출신 제3대대, 칼라오(Callao)시 출신 제4대대, 쿠스코(Cusco) 수렵병 제5대대, 푸노(Puno) 수렵병 제6대대, 근위 수렵병 제7대대, 그리고 수도 리마(Lima) 출신 제8대대였다.

여기에 창기병 연대 1개, 경기병(후사르) 연대 1개, 기병 연대 1개, 포병 연대 2개가 합세해 '남방군(Army of the South)'이 편성되었다. 전쟁 중에는 보병 대대 8개와 수많은 국민방위군 대대가 추가로 창설되었다.

전쟁 중 확장, 그리고 리마 함락

1880년에는 보병이 정규 대대 16개, 국민방위군 대대 7개, 역시 대대 규모의 국민방위군 '팔랑크스' 5개로 확장되었고, 6개 중대 규모의 해병 대대도 편성되었다. 타크나(Tacna)와 아리카(Arica)에서 참패한 후에는 칠레군을 리마 앞에서 저지하기 위해 재편성이 단행되었다. 만 16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건강한 남성이 징집되어 '리마 예비군(Reserve Army of Lima)'이 조직되었다.

이렇게 모은 병력은 약 2만 명이었다. 그러나 이 부대는 무기와 장비가 심각하게 부족했고, 병사들은 충분한 훈련도 받지 못했다. 이론상으로는 정규 보병 대대 30개와 국민방위군 대대 41개를 갖출 규모였지만, 결국 칠레군을 막지 못하고 리마는 함락되고 말았다.

안데스로 숨은 자들, 게릴라전의 시작

해산된 군대의 많은 장교와 병사들이 안데스 산맥으로 피신해 '중앙군(Army of the Center)'이라 불리는 부대를 조직했다. 여기에는 칠레군에 게릴라전을 벌이는 수많은 인디언들이 합류했다. 잔존 부대들로 편성된 소위 '북방군(Army of the North)'도 있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결국 페루는 패배를 인정해 1883년 칠레와 잠정 조약을 체결했으며, 전쟁은 1884년 4월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용감하지만 무장이 빈약했던 페루 보병

페루 보병은 적진의 고백대로 용감한 병사였다. 그러나 훈련이 부족했고, 무기 면에서도 적에게 크게 뒤처져 있었다. 결국 정규 보병은 초기 전투에서 궤멸당했고, 1880년 이후 보병 부대는 적의 진격에 대비해 급조된, 더욱 훈련되지 않은 병력들로 채워졌다. 국민방위군은 더욱 형편없는 훈련만 받았으며, 구할 수 있는 무기라면 무엇이든 쥐여 주는 형편이었다.

소위 '리마 예비군'의 훈련과 장비는 더욱 처참했다. 병력 대부분은 지주들의 인디언 소작인으로, 이 전쟁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반면 살아남아 안데스 산맥으로 피신했던 병사들이야말로 가장 결연한 전사들이었다. 산악의 험악한 기후에 익숙한 케추아(Quechua) 인디언들로 보강된 이들은 칠레군 상대로 지치지 않는 저항을 이어갔다.

제각각인 무기 체계

페루 보병의 무기는 극도로 다양했다. 벨기에제 프랑스 샤스포(Chassepot) 소총 5,000정이 있었고,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개량형인 샤스포 1869년형도 있었다. 여기에 콩블랭(Comblain) 소총 2,000정도 보유하고 있었다. 샤스포 5,000정을 11mm 콩블랭 탄약을 사용하도록 개조하기로 결정했으나, 실제 개조된 것은 2,000정에 불과했다.

전쟁 발발 당시 보병은 개조된 전장식 스나이더-엔필드(Snider-Enfield) M1866 소총 1,417정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쟁 중에는 터키를 통해 발주해 스페인의 레밍턴(Remington)이 제작한 피바디-마티니(Peabody-Martini) 소총을 도입했고, 이집트에서도 레밍턴 소총 5,000정을 추가 구입했다. 결국 페루 보병은 소총의 종류가 너무 많고, 낡았으며, 관리 상태마저 좋지 않다는 삼중고에 시달리며 전쟁을 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