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몰락의 배경
제2차 세계대전은 소련군이 중부·동유럽 대부분을 장악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후 붉은 군대가 해방시킨 국가들은 하나둘 '인민민주주의' 체제로 편입되었습니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동독(GDR)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89년까지 사람들은 전체주의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거듭했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1953년 동베를린 노동자 봉기, 1956년 부다페스트 봉기(헝가리 혁명), 1968년 프라하의 봄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1985년 개혁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그는 정치 체제를 구원하기 위해 광범위한 정치 개혁(글라스노스트)과 경제 개혁(페레스트로이카)을 추진했으며, 새로운 외교 노선을 채택해 미국과의 군축 협상에 착수했습니다.
1987년 워싱턴 INF 조약(중거리 핵전력 조약)은 유럽 내 군사력의 상호 감축을 보장했고, 이 흐름은 1990년 11월 유럽 일반군축조약(CFE 조약) 체결로 이어졌습니다.
한편 소련은 동유럽에 대한 통제를 완화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바르샤바 조약 기구가 더 이상 형제 국가들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브레즈네프 독트린(제한 주권론)을 사실상 폐기했고, 1988년에는 붉은 군대가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에서 철수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주요 인물
미하일 고르바초프, 보리스 옐친,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 레흐 바웬사, 야노스 카다르, 카롤리 그로스, 에리히 호네커, 헬무트 콜, 구스타프 후사크, 바츨라프 하벨, 알렉산더 뒤브체크, 토도르 지브코프, 니콜라이 믈라데노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동유럽 민주화의 경과
고르바초프의 개혁 정책에 대한 동유럽 여섯 나라의 반응은 한결같지 않았습니다.
개혁의 물결을 실질적 변화로 처음 이끈 곳은 폴란드와 헝가리였습니다. 1981년 12월 13일 이래 야루젤스키 장군은 계엄령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자유노조 연대(Solidarność)를 탄압해 왔지만, 만성적인 경제난과 가톨릭 교회(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원에 힘입어 1989년 1월 결국 바웬사가 이끄는 연대와 협상에 나섭니다. 같은 해 자유선거가 실시되었고 마조비에츠키가 공산당과의 연립정부 수반에 올랐는데, 이는 동유럽 최초의 비공산 주도 정부였습니다. 이로써 경제적·정치적 전환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헝가리 역시 체제가 점진적으로 자유화되어 1990년 자유선거를 치렀고,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이 개방되면서 철의 장막에 첫 균열이 생겼습니다. 동독에서는 호네커 체제의 강경책에 반발하는 시위가 거리로 확산되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통일을 제안했고, 독일 재통일은 1990년 10월 3일 공식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벨벳 혁명'이라 불리는 평화적 시위가 1989년 11월 27일 공산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으며, 루마니아에서는 같은 해 12월 21일 차우셰스쿠가 국민들의 만연한 분노 속에 축출되어 권좌에서 물러났습니다.
소련의 해체
이러한 격변은 소련의 운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르바초프는 경제 체제 개혁에 실패했지만, 글라스노스트는 국민들에게 변화의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민족주의 세력들은 소련의 중앙집권 체제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발트 3국이 1989년 최초로 독립을 요구했고, 곧이어 코카서스와 중앙아시아의 공화국들이 뒤따랐습니다. 1991년 6월에는 보리스 옐친이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91년 7월 바르샤바 조약 기구가 해체된 직후, 보수파들은 쿠데타로 고르바초프를 몰아내려 했지만 옐친이 이를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개혁파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같은 해 12월 8일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연합(CIS) 창설에 합의했고, 12월 25일 고르바초프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국가의 대통령이자 불법화된 정당의 서기장으로서 사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련의 임플로전, 즉 내붕괴였습니다.
역사적 의미와 결과
- 양대 진영 중 하나가 소멸하면서 냉전은 막을 내렸고, 미국만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았습니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프랑스 외무장관을 지낸 위베 베드린은 미국을 가리켜 "초강대국(hyperpower)"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 양극 체제의 종식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