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시칠리아 상륙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유럽 본토에 첫발을 내딛은 계기였습니다. 이어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과 그에 따른 전투는 파리 해방으로 이어졌습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남프랑스에서 추가 상륙 작전을 통해 나치 독일 제3제국을 협공하려 했습니다. 이 작전에는 처음 '앤빌(Anvil, 모루)'이라는 암호명이 붙었지만, 발칸 반도 진공을 선호하던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처칠이 물러섰고, 그의 취향에 맞춰 작전명은 '드라군(Dragoon)'으로 변경되었습니다. 1944년 5월 27일부터 니스와 마르세유 사이 독일 방어선에 대한 폭격이 강화되었고, 프랑스 레지스탕스는 적군의 철수를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파괴 공작을 벌였습니다. 아울러 제노바 방면에서는 양동 작전 '스팬(Span)'이 전개되었습니다.
작전 기간: 1944년 8월 15일 ~ 9월 12일
주요 인물
- 윈스턴 처칠 – 영국 총리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연합군 최고사령관
- 로버트 T. 프레더릭 – 미국 공수부대 지휘관
- 아돌프 히틀러 – 나치 독일 총통
- 에드가르 드 라르미나 – 자유 프랑스 장군
- 장 드 라트르 드 타시니 – 프랑스 B군단 사령관
- 조제프 마냥 – 프랑스 장군
- 조제프 드 몽사베르 – 프랑스 장군
- 알렉산더 패치 – 미국 제7군 사령관
- 하인리히 루푸스 – 독일 해군 제독
- 라울 살란 – 프랑스 장군
- 한스 셰퍼 – 독일 장군
- 에메 쉬드르 – 프랑스 장군
- 프리드리히 비제 – 독일 제19군 사령관
작전 경과
패치가 지휘하는 미국 제7군이 주도한 앤빌/드라군 작전은 8월 15일 새벽 4시경 개시되어, 비제가 이끄는 독일 제19군과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로버트 T. 프레더릭 미국 장군의 지휘 아래 9,000명의 병력이 를뮈 평원에 공수 투하된 뒤 해안으로 진격했습니다. 이어 지중해 연합군 최고사령부 산하 부대들이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일부에서 출발해 카발레르와 생라파엘 사이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로메오 부대, 로지 부대, 시트카 부대는 각각 알파, 델타, 카멜이라 불리는 해변에 분산 배치되었고, 네 번째 부대인 럭비 부대는 내륙의 드라귀냥으로 진입했습니다.
장 드 라트르 드 타시니 장군이 이끄는 B군단은 총 26만 명의 프랑스 병사로 구성되었으며, 그중 80%는 흑인 아프리카와 마그레브 출신 등 해외에서 온 병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16일부터 전투에 합류해 신속하게 생트로페, 라마튀엘, 프레쥬스 등을 해방시켰습니다. 교두보, 즉 적 영토 안에 확보한 거점 지역은 기록적인 속도로 구축되었고, 8월 17일에는 '푸른 선'이라 불리는 방어선이 완성되었습니다.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싸우던 독일군은 명백히 열세에 몰렸습니다. 승세를 몰아 연합군은 론 계곡을 따라 북상했고, 그르노블은 1944년 8월 22일 함락되었습니다. 이제 마르세유와 툴롱이라는 두 대형 항구를 해방할 차례는 프랑스군에게 있었습니다. B군단 소속 몽사베르 장군은 마르세유에서 독일 셰퍼 장군의 부대와 맞섰고, 라트르 드 타시니 장군은 마냥·살란 장군과 힘을 합쳐 툴롱에서 독일 루푸스 제독의 부대에 맞섰습니다.
독일군이 곳곳에서 후퇴하는 가운데, 히틀러는 두 항구를 끝까지 사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라트르 드 타시니와 몽사베르는 레지스탕스와 봉기한 시민들의 도움(특히 마르세유에서 두드러졌습니다)을 받아 8월 28일 동시에 승리를 선포했습니다. 패치는 9월 3일 리옹에 입성했고, 9월 12일에는 디종에서 노르망디에서 북상한 연합군과 합류했습니다. 무려 예정보다 40일이나 앞당겨진 것입니다! 드라군 작전은 오버로드 작전(노르망디 연합군 상륙)과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연결되었고, 독일군은 이제 빗살에 갇힌 형국이 되었습니다.
영향과 의의
노르망디 상륙에 가려 '잊힌 또 다른 D-데이'라고 불리지만, 이 작전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연합군의 손실은 극히 적었고 진격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남프랑스가 해방되면서 연합군은 항구를 통한 원활한 보급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자유 프랑스 제1군(B군단)의 참전 덕분에 라트르 드 타시니 장군은 20세기 최대의 분쟁 중 하나를 유럽에서 종식시킨 1945년 5월 8일 독일 항복 문서의 공동 서명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