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러시아 노브고로드의 발굴 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노브고로드 코덱스는 지금도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살아 있는 미스터리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사본에서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숨겨진 텍스트의 층위를 하나씩 밝혀내고 있습니다.
노브고로드 코덱스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즉 여러 층의 텍스트가 덧씌워진 원고로, 원문을 지우고 같은 재료를 반복해서 재사용한 결과물입니다. 이러한 관습은 이집트 파피루스가 귀했고 양피지 값이 비쌌던 7세기경 시작되어 약 5세기 동안 이어졌습니다. 부석 같은 도구로 잉크를 긁어내고 그 위에 다시 글을 쓰는 일이 흔했지만, 그때마다 이전 글자의 흔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남곤 했습니다.
노브고로드 코덱스가 특별한 이유는 발견된 문자 층이 너무 많아 하이퍼 팔림프세스트로 불릴 정도라는 점입니다. 여기에 더해 이 사본은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기도 합니다. 동슬라브족은 오늘날 러시아인, 벨로루시인, 우크라이나인의 직계 조상입니다.
동슬라브족의 기원은 오늘날까지도 학계의 논쟁거리이지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에 따르면 이들은 유럽 북동부로 이주한 스웨덴 출신의 바랑기안(바이킹)이며, 이후 남하하여 중세 키예프 국가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코덱스는 19×15×1cm 크기의 나무판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자(또는 저자들)는 30년에 걸쳐 수백 개의 텍스트를 이 판에 새겼으며, 매번 이전 글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써 내려갔습니다. 나무판은 가장자리의 구멍에 나무못을 끼워 연결해 일종의 책 형태를 이루었습니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코덱스의 제작 시기는 10세기 말로 확정되었으며, 실제로 본문 곳곳에는 '999년'이라는 표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 유물은 2000년 7월 13일, 고대 러시아 도시 노브고로드(현 벨리키 노브고로드)의 발굴 현장에서 발견되었으며, 이곳의 고고학적 조사는 1932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유물은 약 50cm 깊이의 지층에서 나왔고, 해당 지층의 연대는 1015년~1020년으로 추정됩니다. 포함된 텍스트가 기독교 내용이고, 기독교가 988년 키예프 루시에 전파되었음을 고려하면 연구자들은 이 책의 작성 시기를 988년에서 1030년 사이로 확정해 봅니다.
육안으로 읽을 수 있는 표층 텍스트는 고대 교회 슬라브어로 쓰인 시편입니다. 고대 교회 슬라브어는 9세기 비잔틴 선교사들이 테살로니키 지역의 슬라브 방언을 바탕으로 개발한 최초의 슬라브 문어(文語)입니다.
그 아래에서 러시아 언어학자 안드레이 잘리즈냐크(Andrei Zaliznyak)는 수천 개의 이전 텍스트 흔적이 담긴 무수한 층을 발견했습니다. 이 흔적들은 서로 겹쳐 해독하기 어려운 획과 선의 복잡한 미로를 이루는데, 단 한 줄의 문장을 온전히 읽어내는 데에도 몇 주, 길게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숨겨진 텍스트들이 코덱스와 동시에 쓰였는지, 아니면 몇 주, 몇 달, 몇 년 뒤에 덧씌워진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유사한 텍스트가 반복해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독된 텍스트로는 성 요한 묵시록의 일부, 다수의 시편, 요한 크리소스톰의 동정에 관한 논문 번역본, 여러 알파벳 표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 관한 사도 바울의 이야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녀에게 주는 영적 교훈, 죄 사함에 관한 라오디게아의 알렉산더의 교훈처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텍스트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을 분석한 결과, 저자는 공식 교회에서 배제된 집단, 즉 이단에 속한 인물로 추정됩니다. 이 가설은 재구성된 두 문장에 근거합니다.
첫 번째 문장에는 라오디게아 출신의 트라키아 아레오바고인 알렉산더가 언급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신에게만 허락되는 권한이 그에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알렉산더 자신의 여러 예언과, 신자들에게 마을과 집 등 세속적인 모든 것을 떠나라고 권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두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학자들은 이 수도사 이사키이(Isaakiy)가 팔림프세스트의 저자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그는 트라키아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교리를 전파한 아르메니아 출신 예언자 알렉산더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분열적 가르침을 따랐을 것으로 봅니다. 이는 보고밀리즘(Bogomilism)과 관련이 있습니다.
보고밀파는 10세기 트라키아에서 활동한 금욕주의 공동체로, 예수의 신성과 십자가형을 부인했으며 가현설과 영지주의 신앙이 뒤섞인 교리를 지녔습니다. 예컨대 그들은 하느님에게 선한 아들과 악한 아들, 즉 미가엘과 사탄이라는 두 아들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영향은 옥시타니아와 이베리아 반도 북동부 지역에서 카타르파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코덱스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단서는 니콘 연대기입니다. 여기에는 안드레얀(Andreyan)이라는 분열주의 수도사가 1004년에 투옥되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정확히 이 글이 쓰인 시기와 일치합니다. 더욱이 코덱스는 법정으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11세기 건물 유적 근처에서 발견되어 흥미로운 가설을 낳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라오디게아 도시에 대한 수많은 암시도 등장합니다. 라오디게아는 기원전 250년경 안티오코스 2세가 세운 셀레우코스 제국의 고대 도시로, 현재 아나톨리아의 터키 도시 데니즐리에서 북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합니다. 그러나 그 도시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사실이나 사건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기에, 잘리즈냐크는 '라오디게아'라는 단어가 보고밀파 사이에서 일종의 비밀 열쇠 역할을 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추측의 영역으로 들어가자면, 약 500년 후 이단자 표도르 쿠리친(Fyodor Kuritzyn)이 쓴 라오디게아의 메시지라는 분리주의 저작이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쿠리친이 노브고로드 코덱스나 그 속에 숨겨진 내용을 알았을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