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는 유럽 열강들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확장에 나선 시기였다. 각국은 경쟁적으로 광대한 식민 제국을 건설했으며, 그 결과 20세기 초 프랑스는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식민 제국을 보유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박람회의 배경
영국은 이미 1924년 웸블리(Wembley)에서 대규모 제국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었다. 이러한 국제 행사는 국가의 위대함과 국제적 영향력을 중심으로 국민을 하나로 묶는 특별한 계기가 되었다. 정치적 노선과 이념의 분열을 넘어서 국민적 통합을 형성하고, 제국에 대한 자부심을 고양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개최 기간 및 주요 인물
뱅센 국제 식민지 박람회는 1931년 5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약 6개월간 파리 뱅센 숲에서 열렸다. 이 행사와 관련된 핵심 인물은 다음과 같다.
- 가스통 도메르그(Gaston Doumergue): 개막식을 주재한 프랑스 대통령
- 폴 레노(Paul Reynaud): 박람회 준비를 총괄한 당시 식민지 장관
-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초현실주의 시인으로, 박람회 불참을 호소하며 비판 운동을 주도
- 레옹 블룸(Léon Blum): 사회당 지도자로서 박람회 개최에 반대한 대표적 정치인
박람회의 진행 과정
1931년 5월 6일 개막한 뱅센 식민지 박람회는 무엇보다 그 장엄한 규모가 돋보였으며, 그 스케일은 영국의 웸블리 박람회마저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이를 위해 대대적인 공공 사업이 추진되었다. 파리 지하철 8호선이 회장까지 연장되었고, 각 식민지마다 개별 전시관이 세워졌으며, 이국적인 동물들을 전시하기 위한 동물원까지 조성되었다. 프로젝트의 거대함은 상설 박물관 건축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특히 면적 5,000제곱미터에 달하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신전의 복제 건물은 회장의 상징으로 손꼽혔다.
가스통 도메르그 대통령이 직접 개막식을 주재한 이 박람회의 목적은 프랑스 식민지배의 '문명화 사명(mission civilisatrice)'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전시장 곳곳에는 아시아·아프리카 식민지들의 전통 문화가 화려하게 재현되었지만, 동시에 방문객들은 공화국이 식민지에 '가져다준' 도로, 교량, 학교 등 근대화 성과를 담은 사진들도 접할 수 있었다. 요컨대 이 박람회는 프랑스 식민지 정책의 정당성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거대한 선전의 장으로 기능했다.
흥미롭게도 식민지 박람회 개최를 놓고 당시 정치권 내부에는 일종의 초당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는 제3공화국의 정신 속에 식민지배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침묵했던 것은 아니었다. 앙드레 브르통과 초현실주의자들은 박람회 방문을 거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강하게 비판했고, 레옹 블룸 역시 이러한 행사 개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견을 표명했다.
결과와 영향
- 식민지 박람회는 오랫동안 프랑스인들의 집단적 기억 속에 하나의 좌표로 남았다. '제국의 위대함', 이른바 '열등한' 민족에게 전해진 문명의 은혜 같은 서사가 그것이다. 약 800만 명에 이르는 방문객을 기록한 이 행사의 성공은 당시 프랑스 사회가 식민지에 대해 얼마나 큰 관심과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 된다.
- 정치 지도자들은 한때 행사를 연장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으나, 결국 박람회의 해체 작업은 1932년 초에 진행되었다. 회장에 전시되었던 수많은 전시품들은 이후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의 박물관들로 옮겨져 소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