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다

박해에서 관용으로: 기독교의 첫발걸음

서기 초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앙 때문에 극심한 박해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311년, 황제 갈레리우스는 죽음을 앞두고 이전까지 그들을 단죄해 왔던 자신의 입장을 뒤집어 기독교에 대한 관용 칙령을 반포합니다. 박해 금지와 예배의 자유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리키니우스 황제가 반포한 밀라노 칙령을 통해 더욱 확고히 보장되었습니다.

이제 합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기독교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종교에 점점 깊은 관심을 보였고(훗날 직접 개종하게 됩니다), 제국의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종교적 평화를 회복하고자 325년 니케아에 제국 전역의 모든 주교들을 소집했습니다. 배교자라 불린 율리아누스 황제가 잠시 다신교를 부활시키려 시도한 것을 제외하면, 콘스탄티누스의 후계자들은 개종자가 급증함에 따라 기독교의 편에 섰습니다.

392년 11월 8일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다

핵심 인물: 테오도시우스 1세

테오도시우스 1세, 즉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국교로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황제입니다.

기독교 국교화의 과정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테살로니카 칙령을 반포하여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식화했습니다. 이 칙령을 강화하기 위해 그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소집했으며, 이 공의회는 니케아 공의회가 마련한 기독교 교리의 기초를 한층 더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테오도시우스는 이 공의회에서 교회의 행정 체계와 성직 계층 구조를 정립하는 데 힘썼습니다. 나아가 정통 기독교와 다른 신앙을 따르는 모든 이단자들은 추방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인 392년 11월 8일,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제국 전역에서 이교, 다신교 및 제사를 금지했습니다. 스포츠 경기이자 종교 의식이기도 했던 올림픽은 394년 대회를 끝으로 폐지되었습니다. 로마 베스타 신전의 성화(聖火)는 꺼졌고, 원로원에 있던 승리의 여신상은 철거되었습니다. 이제 제국의 종교가 된 기독교는 유일하게 허용된 종교가 되었으며, 신전들은 폐쇄되거나 파괴되었고 일부는 교회로 개조되었습니다. 이제는 이교도들이 박해당하는 차례가 된 것입니다.

결과와 역사적 의미

이교를 비롯한 기독교 외의 모든 숭배를 금지함으로써, 테오도시우스는 이교도들과 아리우스파(정통 교회와 다른 가르침을 전파하다 파문된 사제 아리우스를 추종한 이들)가 조장하던 분열의 위험을 크게 줄였고, 제국 내에 기독교 문화를 굳건히 다져 제국의 안정 회복에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대전환은 고대의 다신교와 옛 신들로부터 일신교로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며, 곧 다가올 중세로 향하는 역사적 전환점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