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토르데시야스 조약 —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세계를 양분하다

15세기 유럽에서는 대항해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발견이 잇달아 이루어졌고, 인류가 아는 세계는 눈부시게 넓어져 가고 있었다. 1481년, 교황 식스토 4세는 칙서(교황이 서명해 반포하는 공문서) 아에테르니 레기스(Aeterni Regis)를 통해 새로운 영토 발견에 대한 독점권을 포르투갈에 부여했다.

그러나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화려한 귀환은 상황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기존 칙서를 폐기하고 새로운 칙서 인터 카테라(Inter Caetera)를 반포해 세계를 분할했는데, 이때 아조레스 제도 서쪽의 모든 영토를 스페인에 귀속시켰다. 덕분에 포르투갈은 신대륙에서 차지할 수 있는 몫이 거의 남지 않은 처지가 되었다.

1494년 6월 7일

토르데시야스 조약 —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세계를 양분하다

주요 인물

  • 페란도 2세(Ferdinand II of Aragon) — 아라곤 국왕
  • 이사벨라 1세(Isabella of Castile) — 카스티야 여왕
  • 주앙 2세(João II) — 포르투갈 국왕
  • 교황 알렉산데르 6세(Pope Alexander VI)

협상 경과

1494년, 두 왕국의 대표단은 다른 유럽 열강을 배제한 채 그 존재조차 아직 확실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나누기 위한 협상에 착수했다.

포르투갈 측은 협상 끝에 경계선을 카보베르데 제도에서 서쪽으로 약 2,000km 떨어진 지점까지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경계선은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자오선(경선)에 따라 설정된 것이었다. 바로 이 성과 덕분에 1500년에야 카브랄(Pedro Álvares Cabral)에 의해 발견된 브라질이 포르투갈령으로 귀속될 수 있었다.

결과와 영향

  •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계기로 미주 대륙의 식민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유럽 열강은 배제되었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왕가가 신대륙 발견에 대한 사실상의 독점권을 손에 넣었다.
  •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보다 유연한 해석을 받아냈다. 즉, 칙서의 효력은 조약 체결 시점에 이미 발견된 땅에만 한정된다는 해석이었다. 이는 프랑스의 탐험 원정에 불을 지폈으며, 그중에서도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의 북미 탐험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