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조약 체결 배경
유럽 통합의 여정은 1951년 파리 조약 체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약 10년간의 외교적 노력 끝에 1957년 로마 조약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을 연대기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51년: 파리 조약이 체결되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창설되었습니다. 벨기에, 프랑스, 서독(FRG),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 6개 회원국의 통합을 통해 유럽 내 상호 무역을 활성화하고 미래의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 1954년: 프랑스 의회가 유럽방위공동체(EDC) 설립안을 부결하면서 정치·군사 분야의 유럽 통합 구상은 좌절을 겪었습니다.
- 1955년: EDC 실패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CSC 6개 회원국이 각료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른바 메시나 회의는 공동시장 창설을 논의하며 경제 분야에서 통합된 유럽의 원칙을 확립했습니다.
- 1956년: 벨기에의 외무장관 폴앙리 스파크(Paul-Henri Spaak)가 유럽 관세동맹에 관한 보고서, 이른바 스파크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공동시장과 원자력 분야, 두 개의 공동체 창설을 골자로 하며 로마 조약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 1956년: 공동시장과 유라톰을 위한 정부간 회의가 벨기에 발 뒤셰 성(Château du Val Duchesse)에서 폴앙리 스파크의 주재 아래 개막되었습니다. 관세장벽 철폐에 소극적이었던 프랑스가 협상의 중심에 서면서, 이 협상들은 로마 조약 체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57년 3월 25일

주요 인물
- 폴앙리 스파크(Paul-Henri Spaak)
-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
- 장 모네(Jean Monnet)
체결 경위
발 뒤셰 성에서의 협상을 마친 뒤, '유럽 6개국'의 대표들은 1957년 3월 25일 로마에 모여 두 개의 별도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하나는 공동시장 창설에 관한 조약, 즉 유럽경제공동체(EEC) 설립 조약이었고, 다른 하나는 유럽원자력공동체(유라톰, Euratom) 설립에 관한 조약이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단수형이 아닌 '로마 조약들(Treaties of Rome)'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공동시장 설립 조약의 핵심 목적은 상품이 유럽 전역에서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법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6개 회원국 간의 관세장벽 철폐가 추진되었으며, 이 조약은 이후 발전할 각종 공동정책의 토대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유라톰은 민간 원자력 분야에서 유럽 차원의 협력을 통해 대륙의 에너지 자급자족을 실현하려는 프랑스의 야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유럽의 재정 지원이 민간 원자력 기술 발전으로 이어져 원자무기 보유에 한층 빠르게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로마 조약은 1956년 부다페스트 봉기로 상징되는 냉전 시대라는 격동의 맥락 속에서 체결되었으며, 양대 진영의 긴장 관계는 '제3의 세력'으로서 유럽을 건설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역사적 결과와 영향
- 1958년: 스트레사 회의가 로마 조약의 기본 틀을 바탕으로 공동농업정책(CAP)의 추진에 나섰고, 이는 1962년에正式 시행되었습니다.
- 1973년: 영국, 덴마크, 아일랜드의 가입으로 첫 번째 회원국 확대가 이루어졌습니다.
- 1986년: 단일유럽의정서(SEA)가 공동시장을 한층 심화시키며 이를 '내부 시장'이라 명명했습니다.
-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통해 유럽 시민권이 창설되었습니다.
- 1995년: 셴겐 협정이 발효되어 회원국 간 인적 자유 이동이 가능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