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8세기 화려함을 그대로 간직한 파리의 자랑, 호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

18세기 화려함을 그대로 간직한 파리의 자랑, 호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

파리 호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 관리인 안뜰의 유리 지붕 • 프랑스 국립기념물센터(Center des Monuments Nationaux) 제공


약 4년간의 대대적인 공사와 개선 작업을 마친 파리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의 호텔 드 라 마린이 마침내 일반 공개를 위해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방문객들은 이 아름다운 저택의 오랜 역사를 탐방하는 동시에, 18세기 장식 예술의 정수를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권력의 위광을 담은 건축

1755년, 루이 15세는 현재의 콩코르드 광장 부지에 왕권의 위엄을 드러낼 웅대한 도시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당초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두 개의 궁전이 로아얄 거리(rue Royale)를 사이에 두고 건설되었는데, 이는 국왕의 수석 건축가 앙주 자크 가브리엘(Ange Jacques Gabriel)의 손으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10년 후, 국립가구관리국(Mobilier national)의 전신인 왕실가예무부(Garde-Meuble de la Couronne)가 이곳으로 입주했습니다.

명문 행정 기관이었던 왕실가예무부는 왕실 거처의 가구를 관리하고 귀중품들을 보존·유지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무기와 갑옷, 장식 미술품은 물론, 유명한 왕관 보석들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전시실이 마련되어 왕실 컬렉션을 귀빈들에게, 이후에는 일반 대중에게 선보였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이 건물은 해군성이 일부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792년에는 철저한 경비가 이루어지지 못한 왕관 보석 일부가 도난당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가예무부가 해산되면서 해군이 건물 전체를 차지했고, 1801년에는 조선 모형과 조제프 베르네(Joseph Vernet)의 해양 풍경화를 전시하는 해군 박물관을 열었습니다. 호텔 드 라 마린은 권력의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위상도 이어갔습니다. 1804년 나폴레옹 황제 즉위를 기념하는 무도회가 열렸고, 1848년 노예제 폐지령으로 이어진 빅토르 슈엘셰르(Victor Schoelcher) 주재 위원회 회의도 이곳에서 개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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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해군 참모부가 철수하면서 이 건물은 프랑스 국립기념물센터(Center des monuments nationaux)에 위탁되었습니다. 오늘날 방문객은 가예무부 관리인의 아파트먼트, 근위대장의 집무실, 의전 홀, 관리인 안뜰, 그리고 콩코르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까지 둘러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올가을부터는 호텔 드 라 마린에서 카타르 에미르 소유의 6,000여 점이 넘는 작품으로 구성된 알타니(Al Thani) 컬렉션이 선보입니다. 이 컬렉션은 향후 20년간 순환 전시 형태로 공개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