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용 인식표란 무엇인가?
군용 인식표는 흔히 '도그태그(Dog Tag)'라는 비공식 명칭으로 불리는 군복의 필수 요소다. 전사자의 시신이 훼손되거나 함께 있던 동료들이 모두 사라지는 등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착용자의 신원을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전장에서 전사자를 체계적으로 식별하는 방법에 본격적인 관심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흥미롭게도 최초의 움직임은 군이 아니라 민간에서 일어났다.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1861~1865) 당시 병사들과 그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신분 증명판을 마련해 사용한 것이 그 시초였다.
독일 쪽에서는 베를린의 한 장인이 육군부에 병사들에게 신분판을 지급할 것을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개에게 부착하는 '개표(dog plate)', 즉 견주가 세금을 납부했음을 증명하는 표지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연유로 인식표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여러 나라의 군대 은어에서 '도그태그(dog tags)'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프랑스어에서도 개 목걸이와 닮았다는 이유로 유사한 명칭으로 번역되었다.
인식표의 형식과 기록 정보
인식표의 규격은 나라마다 다양하지만, 미군의 도그태그에는 성, 이름, 사회보장번호(군번번호), 혈액형, 종교가 새겨진다.
이 정보들은 작은 금속판에 각인되며, 금속 사슬에 연결해 목에 걸고 다닌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병사의 마지막 파상풍 예방접종 날짜가 추가되기도 했다. 인식표는 주로 전사자와 부상자의 신원 확인에 사용된다.
야전의 병사들은 항상 인식표를 착용해야 한다. 인식표는 늘 두 조각으로 구성되는데, 하나는 쉽게 분리할 수 있어 전사자의 상관이 신속히 회수한다. 이 조각에는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경우에도 부대의 손실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다. 다른 하나는 시신과 함께 영구히 남으며, 흔히 시신과 함께 매장되거나 관에 고정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시신 관리 부서에 필요한 정보(종교, 생년월일 등)가 기록되어 있다.
영화 덕분에 가장 널리 알려진 미국식 모델의 경우, 시신에 남는 쪽은 목에 두른 사슬에 연결되고, 분리 가능한 쪽은 잘 끊어지는 가는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두 금속판이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병사들은 고무줄로 감싸 소음을 없애곤 했다.
프랑스, 캐나다, 이스라엘 군대 등에서 사용되는 또 다른 일반적인 모델은 타공선이 있어 쉽게 부러뜨릴 수 있는 형태다. 장교가 자기 몫을 떼어 가면 나머지 절반은 사슬에 연결된 채 시신과 함께 남는다.
역사
남북전쟁(1861~1865) 당시 일부 병사들은 자신의 주소가 적힌 종이 쪽지를 코트 안쪽에 붙였다. 다른 병사들은 배낭이나 벨트 버클 홀더에 신분 표식을 부착해 다녔다.
훈장 제작업자들은 여기서 시장성을 발견하고 정기적으로 인식표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든 금속판은 대개 소속 부대를 나타내는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병사의 이름과 부대가 새겨졌다.
황동으로 만들어 한쪽에 구멍을 뚫은 금속판도 있었는데, 보통 한쪽 면에는 독수리나 방패 문양과 함께 '연방을 위한 전쟁', '자유, 평등, 연방' 같은 문구가 새겨졌다. 다른 면에는 병사의 이름, 부대, 때로는 참전한 전투 목록이 적혔다.
1862년 뉴욕 출신의 존 케네디(John Kennedy)는 연방군 전체에 인식표를 공급하겠다고 미국 육군에 서신을 보냈다. 국립문서보관소에는 이 편지와 함께 아무런 설명 없이 거절한다는 내용의 답신이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
미국 육군이 도그태그를 처음 공식 승인한 것은 1906년 12월 20일자 육군부 훈령 제204호였다.
"지름이 은화의 절반 정도이고 적당한 두께를 가진 알루미늄 인식표에 소유자의 성명, 계급, 중대, 연대를 각인하여, 육군의 모든 장교와 사변이 전장에 있을 때마다 휴대해야 한다. 인식표는 작은 구멍에 끈이나 가죽끈을 통과시켜 목에 걸고 옷 안쪽에 착용한다. 군복의 일부로 규정되며, 위와 같이 착용하지 않을 때에는 보통 본인이 소지한다. 인식표는 육군부가 사변들에게 무료로 지급한다."
1916년 7월 6일 육군은 규정을 변경해 모든 병사가 인식표 두 개를 지니도록 했다. 하나는 시신과 함께 남기고, 다른 하나는 기록 보관을 위해 매장 담당자에게 넘기도록 한 것이다. 1918년에는 육군이 일련번호 체계를 채택·배포했고, 이름도 함께 새기게 되었다.
모든 사변의 도그태그에는 일련번호가 각인되었다. 일련번호 1번은 시카고 출신 사변 아서 B. 크린(Arthur B. Crean)이 다섯 번째 입대 기간 중에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병사의 군용 인식표로, 뒷면에는 염산으로 새긴 지문이 남아 있다. 아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병사에게 사용된 인식표 모델이다.
1969년 육군은 인원 식별 수단으로 사회보장번호를 채택했다. 두 개의 판을 사용하는 대신, 쉽게 분리되는 절반 형태의 인식표 하나만 사용하는 국가 군대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도그태그 한쪽 끝의 홈(notch)에 관해서는 유명한 미신이 있다. 이 홈의 기능은 전우가 전장에서 시신을 발견했을 때 인식표를 시신의 이빨 사이에 물려 시신과 함께 남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홈은 의무 부서용 정보를 복제하는 기계인 '어드레소그래프 모델 70(Addressograph Model 70)'에 판을 고정하기 위한 용도일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병대는 육군과 공군이 사용하던 도그태그를 채택했고, 이로써 단일한 규격과 크기가 미국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베트남전 당시 병사들은 적에게 금속성 소음을 들리지 않도록 도그태그에 고무 침묵 커버(silencer)를 끼우는 것이 허용되었다. 어떤 이들은 두 판에 테이프를 붙였고, 또 어떤 이들은 한 판은 목에, 다른 한 판은 신발끈에 걸고 다니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도그태그의 각인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그 이전에는 금형으로 오목하게 눌러 찍는 방식이 사용되었는데, 이른바 '인덴트(indent)' 방식은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 시기의 모델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0년대에 육군은 글자가 돌출되는 '엠보스(emboss)' 각인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는 판에 새겨진 정보를 훨씬 선명하게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이 각인 방식은 현재까지도 미군에서 사용되고 있다.
도그태그는 전통적으로 전장에서 전사한 병사를 추모하는 데 쓰이는 물품이기도 하다. 총검을 장착한 소총을 땅에 꽂아 세우고 그 위에 헬멧을 얹는 추모 형태에서, 도그태그는 총의 손잡이나 가드에 걸어둔다.
최근 군은 인식표를 더 이상 '도그태그'라고 부르지 않고 'ID 태그(ID tags)'라는 명칭을 채택했다. 1990년대에 신병 훈련생들이 '도그태그'라는 용어가 모욕적이라고 불평했던 것이 그 배경으로 알려진다.
대중문화 속의 도그태그
1990년대에는 영화, 특히 전쟁 영화 덕분에 도그태그가 대중문화에 진입했다. 베트남전을 다룬 작품들이 도그태그 활용의 대표적 사례다. 영화가 군사 분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려 하기 때문에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같은 작품들은 도그태그를 비중 있게 다루었고, 도그태그는 특정 전쟁 영화의 상징적 소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영화를 통한 도그태그의 대중화는 상업적 수요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오랫동안 대부분의 군용 잡화점에서 몇 유로만 내면 원하는 문구를 각인한 레플리카를 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밀리터리 애호가들의 수요에 불과했지만, 도그태그는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패션 액세서리가 되었다.
도그태그는 수많은 스타들의 목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데이비드 베컴, 에미넴, 윌 스미스 등 수많은 랩 뮤지션들이 도그태그 착용을 유행시켰다. 구찌(Gucci)는 남성용 주얼리로 순은 도그태그를, 여성용으로는 더 작은 버전을 선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