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6년부터 마르세유 항구에서 알제리로 향하는 배에 오른 스무 살의 징집병들은,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단지 '사건(les événements)'이라고 불렀다. 공식적으로 '알제리 전쟁'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까지는 무려 1999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전선과 일상 사이, 극심한 단절
수개월 만에 휴가로 잠시 귀국한 병사들이 마주한 것은, 자신들이 겪은 전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프랑스 본토의 일상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산 능선 위에서 밤새 펠라가(fellaga) 게릴라의 기습을 경계하던 그들 눈에, 토요일 저녁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어긋나 보이고 혼란스러웠을까.
150만 명에 달하는 징집병 각자의 인생은 실로 제각각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 세대 전체는 '이름 없는 전쟁'이라는 도가니를 함께 통과하며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유령 세대의 침묵
39-45년 전쟁 세대와 68혁명 세대 사이에 끼어 있는 이 '유령 세대'의 특징은, 바로 자신들이 겪은 경험을 가슴속에 묻어두었다는 점이다. 이후 이 남성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고, 설령 입을 열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조각조각 흘리는 정도에 그쳤다. 그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집단적 수치심을 짊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알제리가 독립하자 사회는 이제 페이지를 넘겨야 했다. 이 참전 용사들은 어색하게, 부끄럽게나마 인정받았을 뿐이다. 자신의 청춘에서 가장 생생한 한 부분을 그 땅에 남기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부인(否認)은 억누르는 듯한 고통이었다. 결국 이 남성들은 다친 상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도 모르면서 옛 상처를 건드리느니, 차라리 가정을 꾸리고 직업에 헌신하며 소비사회의 물결에 몸을 맡기는 쪽을 택했다.
억눌린 과거는 반드시 되돌아온다
그러나 억눌린 기억은 반드시 되살아나, 본인을 혹은 가족과 다음 세대를 괴롭히게 마련이다. 과거를 진정으로 지나보내기 위해서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을 빛 속으로 끌어내어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