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오페라 극장의 공연장, 살롱, 휴게실로 이어지는 웅장한 의식용 계단 • WIKIMEDIACOMMONS
1909년 9월, 파리 신문 『르 골루아(Le Gaulois)』는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연재 소설의 첫 화를 실었다. 아직 기자직을 떠나지 않았던 작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는 파리 오페라 극장인 가르니에 궁전(Palais Garnier)에서 일어난 일련의 기이한 사건들을 직접 취재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소설이 바로 그 조사 결과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연재가 이어진 5개월 동안 독자들은 무대 뒤를 배회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자에게 죽음을 안기는 유령의 이야기에 깊이 매료되었다.
절박한 사랑
사실 유령의 정체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기형이어서 진짜 유령처럼 보이는, 평생 괴로움 속에 살아온 한 남자였다. 르루는 그를 건축·마술·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천재로, 동시에 오페라 지하에 거처를 마련한 '산 자의 몸을 빌린 죽은 자'로 그려낸다. 이 남자는 젊은 소프라노 크리스틴 다에(Christine Daaé)에게 반해 성악 레슨을 해주며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곁에 붙잡으려 하고, 심지어 납치해 자신의 은신처에 유폐하기까지 한다. 지하 통로의 함정, 웅장한 객석으로 굴러떨어지는 샹들리에, 복수와 죽음 같은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이끈다.
결국 에릭(Erik) — 주인공의 이름이다 — 은 구원의 의미를 담아 크리스틴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연인 라울 드 샤니 자작(Raoul de Chagny)과 함께 보내주기로 한다. 소설의 에필로그에서 르루는 유령의 최후를 전한다. 외롭고 절망한 채 좌절에 시달리면서도 갈망하던 사랑의 빛을 한 번쯤은 엿본 그는, 오페라 지하에 스스로를 가두고 세상과 단절된 채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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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루는 대중 추리소설의 개척자였다. 1907년 『노란 방의 비밀』로 시작한 아마추어 탐정 룰타비유(Rouletabille) 시리즈를 1920년대까지 성공적으로 이어갔다. 『오페라의 유령』 역시 독자들은 물론 관객들도 사로잡았다. 여러 차례 영화화(론 채니가 주연을 맡은 1925년작 포함)되었고, 최근에는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뮤지컬로도 태어났다.
무대 아래 숨겨진 호수
연재 첫 화부터 가스통 르루는 자신이 여러 장에 걸쳐 들려줄 이야기가 실제 사실에 근거한다고 못박는다. "오페라의 유령은 실존했다. 오랫동안 믿어져 왔듯 예술가의 상상력도, 극장 경영자들의 미신도 아니었다." 실제로 다른 전설들처럼 오페라의 유령 전설 역시 진실의 요소들 위에 세워져 있으며, 작가는 문학과 현실 사이의 하이브리드 서사를 빚어낸다.
유령 이야기의 첫 번째 영감은 오페라 극장 자체에서 나왔다.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권력을 상징하는 음악의 성전을 세우고자 했다. 1862년 공사가 시작되자 뜻밖의 장애물이 지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습지 위에 세워질 건물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센 강의 오래된 지류였다. 기반을 보강하기 위해 건축가 샤를 가르니(Charles Garnier)는 벽으로 격리된 인공 호수를 설계해 건물을 튼튼하게 하고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았다. 오늘날 파리 소방대는 연중 두 차례 호수의 물을 배수해 지하수위가 올라가지 않도록 관리하며, 그곳에 사는 물고기도 함께 보호한다. 이 대형 저수조와 지상 사이에는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지하 갤러리 다섯 층이 세워져 있다.
이 모든 것이 르루에게 인물 창조의 영감을 준다. 가르니에게 고용된 조수 에릭은 약 15년에 달하는 공사 기간을 이용해 인간 세상과 단절된 자신만의 은신처를 설계한다는 설정이다.
밀봉된 음악
소설의 도입부 장면은 르루가 직접 목격한 실제 사건에서 따온 것으로, 바로 이 지하에서 펼쳐진다. 1907년 프랑스 그라모폰 컴퍼니의 국장 알프레드 클라크(Alfred Clark)와 오페라 극장장 페드로 가이야르(Pedro Gailhard)가 이끄는 무리가 거의 비밀에 가까운 임무를 수행한다. 클라크는 당대 오페라 가수들의 녹음판 여러 장을 국립음악원에 기증하되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금속 항아리에 봉인해 100년이 지난 뒤에야 열 것. 가이야르는 이 보물을 햇빛과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오페라 지하, 인공 호수 근처에 보관하기로 했다. 항아리는 2007년에 마침내 열렸고, 녹음들은 『오페라의 항아리(Les Urnes de l'Opéra)』라는 제목의 CD 세 장에 담겨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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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루는 이 사건을 받아들이되 한 가지를 덧붙인다. 노동자들이 금고를 만들려고 지하벽 하나를 뚫기 시작하자 그 벽이 무너지면서 완전히 가구가 갖춰진 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곳에는 부패한 시체까지 있었다. 르루에 따르면 오페라 측은 이 뜻밖의 발견을 감추고자 시체를 공동묘지에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가는 면밀한 조사 끝에 고인의 해골에서 기형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그 남자가 누구든, 살아 있는 동안 스스로 벽 안에 들어가 그곳에서 죽기 위해서만이라도 머물렀으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파리 오페라에 미스터리한 해골이 있었던 적은 없다. 그럼에도 훗날 그것이 1871년 파리 봉기에 참여한 코뮌당원(Communard)의 시체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입증된 사실은 단 하나, 1870년 프로이센군이 파리를 포위하는 동안 이 건물이 피난처이자 탄약과 물자 저장고로 쓰였다는 것이다. 반면 코뮌 이후 수년이 지나 1871년 탄압의 희생자가 된 수천 명의 코뮌당원 유해가 수도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실존했던 크리스틴
여주인공 크리스틴 다에는 현실과 픽션이 뒤섞인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이다. 이 허구의 인물과 당대 한 성악가 사이의 유사성은 두말할 나위 없이 뚜렷하다. 르루는 자신의 소프라노를 빚을 때 크리스티나 닐손(Christina Nilsson)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스웨덴 출신 농부의 딸이었다. 어머니는 그들이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를 따라 마을에서 마을로 옮기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민요를 불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자 후원자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들은 친딸처럼 돌봤을 뿐 아니라 파리 오페라계의 문까지 열어주었다. 마침내 두 사람 모두 귀족과 결혼했다. 닐손의 경우 스페인 귀족 카사 미란다 백작이 배우자였다.
그렇다면 유령은? 르루가 소설을 쓰던 무렵 파리에서는 유령 이야기가 실로 성행했다. 1905년에는 생리학자 샤를 리셰(Charles Richet, 1913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가 알제리에서 유령이 출현했다는 사진까지 곁들인 보고서를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르루는 그런 미신에 흔들리지 않았고, 소설 속 에릭은 진짜 유령이 아니다. 그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며, 타인의 두려움과 미신을 교묘히 이용해 유령 행세를 하는 인물이다.
소설에서 영화로
『오페라의 유령』은 1909년 9월부터 1910년 1월까지 신문 『르 골루아』에 처음 연재되었다. 이 작품은 이후 여러 차례 영화와 연극으로 각색되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86년 초연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이다.
공사의 파란만장한 행로
파리 오페라의 새 궁전은 나폴레옹 3세의 왕관에 박힌 보석이 될 예정이었다. 1861년 공모전에서 우승한 젊은 건축가 샤를 가르니의 프로젝트였다. 가르니는 사치와 화려함이 특징인 웅장한 건물을 설계했고, 극장의 모든 층을 연결하는 흰 대리석의 장엄한 대계단을 갖췄다. 공사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어 1871년 코뮌 봉기로 중단되었고 1873년에야 재개되었다. 건물은 2년 뒤 준공되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황제도, 새 정권에 밀려나간 건축가도 그 자리에 없었다.
샹들리게 조심!
르루 소설의 핵심 장면 중 하나는 오페라의 유령이 사랑하는 여인의 연적을 겁주려고 객석의 커다란 샹들리에를 그 가수의 발밑으로 떨어뜨리는 대목이다. 비슷한 사건이 실제로 1896년 5월 20일에 일어났다. 플로케의 오페라 『엘레(Hellé)』 공연 중 커다란 수정 샹들리에 — 정확히는 거대한 샹들리에 추(counterweight) — 가 관객 위로 떨어져 4열에 앉아 있던 여성 한 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쳤다. 이 사건은 경찰을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경찰은 테러 가능성까지 검토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