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기 303년,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격렬하고도 긴 기독교 박해, 이른바 '대박해(Great Persecution)'가 막을 올렸습니다. 이 박해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수많은 신앙인들에게 어떤 시련을 안겨주었을까요?
역사상 가장 길고 격렬한 박해
'대박해'는 일련의 대대적인 박해 가운데 세 번째 사건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된 극심한 폭력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동시에 가장 오래 지속된 박해이기도 했습니다. 서기 303년 2월부터 304년 2월 사이에 반포된 네 차례의 제국 칙령으로 시작되어, 이탈리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이미 307년에 종결되었지만 소아시아 속주에서는 무려 315년까지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역마다 달랐던 칙령의 적용
칙령의 집행은 지역에 따라 매우 불균일하게 나타났습니다. 제국 통치를 분담하던 사두정치체(테트라르키아) 입장에서 이 박해는 무엇보다 지정학적 계산이 앞선 정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박해의 실질적인 효과를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희생자 명단과 몰수 재산 목록이 남아 있는 아프리카와 이집트에서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종교의 '머리를 자르다'
첫 번째 칙령들은 주교들을 주요 탄압 대상으로 삼았고, 젊은 종교를 뿌리째 뽑기 위해 군대와 궁정의 숙청을 명령했습니다. 나아가 공동체 건물과 그 안의 비품, 가난한 이들을 위해 비축된 구호 물자까지 포함한 재산을 압수하고, 예배 용구와 전례서를 거리에서 불태우도록 함으로써 교회의 기반 시설 자체를 무너뜨리고자 했습니다.
'트라디토레스', 배신당한 신앙
그러나 모든 성직자가 순교를 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처음부터 항복을 선택해 교회의 재산을 관헌에게 '넘겨주었는데', 이런 이유로 그들은 '트라디토레스(traditores, 넘겨준 자들)'라는 멸칭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 배신의 상처는 훗날 교회 내부의 큰 분열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평신도까지 강요된 제사
마침내 일반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압도 피할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제국 칙령은 소송이 시작되기 전에 원고가 반드시 황제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순교자 명단에 따르면 한 지역에서 20명에서 40명 정도의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추방당하고 고문당한 이들은 훨씬 더 많았으며, 형벌로서의 고문은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기독교인을 다시 국교로 돌아오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심문 과정에서 신앙 자체에 대한 질문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